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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와의 전쟁

아이들 건강을 위해 격전을 치르고 흐뭇해지다

by 황교진

주일예배 마치고 오는 길에 자장면 먹고 싶다는 영승이 말에, 나는 맛있는 집에 가서 오래간만에 외식하자는 주의였고, 아내는 얼른 집에 가서 배달시키자는 주의였다. 결론은 개그맨 김학래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가서 맛난 탕수육과 자장, 짬뽕으로 네 식구가 오붓하게 외식을 했다.
아이들은 배부르고 고단하여 차에서부터 꿈나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무거운 큰아들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곤히 자는 작은 아들 모습 보며 아빠 노릇 좀 더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기운 내어 한 달 전부터 벼르던 대청소와 곰팡이 제거를 하기로 했다. 온 집안 먼지를 털고 스팀청소기 걸레를 끼워 바닥을 소독하다시피 했다. 아래층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시끄럽지 않도록 9시 전에 바닥 청소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곰팡이 제거에 돌입했다.


한 달 전부터 주말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지나쳐 온 팡이 녀석과의 격전을 위해 뱅 스프레이를 미리 사두었다. 버려도 될 수건을 꺼내 걸레로서의 임무를 부여하고, 특공대에 해당하는 극세사포도 준비시키고, 5분 대기조인 1회용 청소포까지 준비해 세 가지 특성의 전투력을 부여하고 대야에 물을 받아 세제를 풀어 용병들을 매복시켰다.

앞쪽 발코니 창틀은 아군의 피해 없이 무난하게 대승을 거두었다. 문제의 뒤쪽 발코니 우측 벽면과 세탁기 옆 창문을 숙주로 기생 중인 잔당들을 가볍게 소탕했다.


921686_10151339951551971_973555145_o.jpg 곰팡이가 점령한 발코니 창


문제는 사진에서 보는, 2년 전에 제거한 '여기어디고'성의 좀비 놈들이다. 죽여도 죽여도 흉측한 모습으로 살아난다.
오늘밤 '황혼에서 새벽까지' 붙어보기로 하고 아군의 전력을 재정비하고 출격 나팔을 불었다. 팡이 녀석들을 꼼짝 못하게 할 최루탄 뱅을 뿌리고 정신이 혼미해진 적진에 1회용 청소포를 투입시켰다. 포자로 내 코의 점막을 공격하는 팡이들의 주특기에 당하지 않도록 황사마스크를 미리 착용해둔 것이 다행이다.


시커먼 전장에서 장렬히 사망한 청소포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의를 가다듬고 세재에 담가 둔 반수건으로 155미리 자주포를 발사해 검은 무리들을 회색분자로 타격했다. 잠시의 쉴 틈을 주지 않고 대기 중인 깨끗한 반수건으로 회색분자들을 전멸시키니, 지하 방공호에 숨어 있던 우리의 백의민족이 만세를 부르며 나타났다. 그동안 팡이들에게 시달린 고통이 컸던지 마스카라 번진 까만 눈물을 마구마구 흘리기에 우리 용병들도 콧잔등이 찡해왔다.


913724_10151339951831971_1464428791_o.jpg 곰팡이 제거 후 깔끔해진 창호와 벽


이제 한 2년은 팡이들로부터 자유다. 오늘 알레르기 비염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해산!




904784_10151339952326971_1130943132_o.jpg TV 없는 '거실을 서재로' 컨셉의 우리집 거실


새벽 한 시까정 우리 아이들을 위협하는 팡이들과 격전을 치르고 욕조에 몸 담그고 쓴다.
맨 오른쪽 거실을 서재로 공간 청소 후 책들이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영혼까지 흐뭇하다.^^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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