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은 마음과 잘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의 사이
작년 가을,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성남)의 지성학특강에 초대받아 2시간 동안 일반학부 학생들에게 강의한 적 있다. 학장님이 자주 강의되는 4차산업혁명 같은 지식이 아닌, 삶의 스펙트럼을 강의할 수 있는 강사 섭외를 원하셔서 한 교수님이 나를 추천해 주셨다. 얼마 전에 은수미 성남시장이 가천대학교 지성학특강을 하셨다는 기사가 떠 있다.
당시 사회적기업 창업에 분투하다 특별한 준비 없이 성남에 달려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2시간을 채웠다. 500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며 잘 경청해 주었고(물론 자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음) 질문도 여럿 해주어서 기독교 밖 세상에서 2시간 강의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래도 무척 어려운 강단이었다. 내 콘텐츠 중에 기독 신앙 메시지를 덜어내야 했고, 음대 강당이어서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까지 다 들리는 예민함도 긴장감을 주었다.
앞자리에서 들으신 학장님이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 주셨다. 나를 추천하신 교수님과 차를 한 잔 들고 돌아오며, 매일 진이 빠지는 일상을 대하는 자신감이 좀 생기기도 했다.
올해 그 학장님이 메디컬캠퍼스(인천)에서 하는 지성학특강에 다시 추천해주셨다. 내가 강의하기로 약속한 그날이 오늘이다. 오늘 성남이 아닌 인천의 가천대학교 약학대 강당에서 3시부터 5시까지 강의한다.
어제부터 몹시 긴장이 되었다. 여러 번 경험한 강의였지만, 요즘 내 삶이 학생들 앞에서 뭔가 자신 있는 언어로 메시지를 전할 만큼 제대로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에너지가 바닥난 채로 겨우 견디고 있다. 조금만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힘이 다 빠지고 만다. 삶에 기대감, 호기심, 열정이 없다. 억지로라도 힘을 끌어올려 강단에 서려고 지금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지난주 강릉의 작은 아카데미로 초청받은 인문학특강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가 귀가하는 시간에 마음이 고단해져 몇 번을 휴게소와 졸음쉼터에서 쉬면서 왔다. 내 일상을 다시 마주하기가 싫었다. 집을 떠나서 낯선 곳에 머물며 쉬고 싶었다. 고통과 불안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어머니와 함께한 20년을 말하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5월인데 교회 쪽에서 간증을 한 건도 요청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강연 수입이 없는 게 걱정인 아이러니를 눌러야 했다.
어쨌든 오늘 겨우 잠에서 깨어 목욕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뭐든 쓰고 싶어서 컨디션을 잘 회복하고 씩씩해지려고 끄적인다. 아무 자격도 없다는 생각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깊은 골짜기에서 허우적거린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인식과 당당하라는 외침의 메아리가 모두 맞는 말이면서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인생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이방인처럼 익숙한 모든 것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