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절제미, 한국 영화의 배우력
브런치무비패스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2004년작 일본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본 관객들에게는 이번 한국 버전의 동명 영화에 거는 기대와 염려가 남다를 것이다. 한국 관객들 중에도 '인생 영화'라고 극찬할 만큼 인기를 끈 원작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 낼지 말이다. 지난해 말 난 생애 처음 해외여행으로 2박 3일 도쿄에 다녀왔다. 직접 본 일본의 자연과 문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콘텐츠와 예술의 힘을 느꼈다. 그 후 틈틈이 일본 명작들을 감상했다. 조금 억지스러우면서도 디테일은 촘촘했고, 스며드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 억지도 어찌 보면 문화의 차이일 수 있다. "괜찮습니까?"를 "대장부입니까?"로 말하는 그들의 관습을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억지는 어쩌면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코드일 수 있다.
멜로물보다 액션과 스릴러물을 주로 만드는 한국 영화에 식상한 상태에서 <러브레터> <도쿄타워>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의 영화를 꽤 감탄하며 보았다. 일본 영화와 문학에 담긴 이야기의 힘이 탁월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 원작 영화 제목의 지금 옆에는 쉼표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청순한 다케우치 유코가 소심하고 어벙해 보이는 나카무라 시도에게 달려가면서 쓴 '지금,' 이 쉼표에도 감동이 밀려온다. 줄거리를 대략 말해야 한다. 후반부에 폭풍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설명하면 스포일러다. 그래서 영화평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난 일본 원작에서 다케우치 유코에게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에게 받은 그 청순함과 단아함을 느끼고 팬이 되었다. 그녀의 많은 필모그래피 중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보여준 신비로움과 따뜻한 엄마와 아내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 아이오 타쿠미 역의 나카무라 시도는 가부키 배우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가부키의 길을 걸으며 인정받다가 우리에게 알려진 <적벽대전>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로선 꽤 출중한 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좀 맹하고 어리숙하면서 애절한 주인공을 극도로 잘 표현했다. 정우성이나 소지섭처럼 잘생긴 배우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주연남으로는 잘생김보다는 어리숙함이 더 적합하다.
일본 원작을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그만큼 원작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판타지스럽고 동화 같으면서도 억지로 감정을 끌고 가지 않는다. 여자 주연의 청초함과 단아함, 첫사랑의 기억과 순정이 신비롭게 스며든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픈' 자기만의 슬픈 첫사랑을 가진 사람에게 이 영화는 특별하다. 자신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선택 지점이 있어도 지금 그 사람과 만나서 정해진 운명을 선택하는 마음, 그곳이 이 지상에서의 삶의 끝이어도 짧지만 깊은 행복을 만나겠다는 마음이 자기 기억 속에 있다. <러브레터>의 죽음과 달리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내게 각인돼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생성시킨다. 그 첫사랑 이야기를 해석과 편집 없이 원 시점으로 돌려 의미를 찾게 하고, 기억 속에서 수없이 헤맨 고통과 후회를 현실로 가져다 놓는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첫사랑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한 번 더 기회를 갖고 다시 떠나보내기까지 조마조마하면서 궁금해진다. 나라면 가슴 떨리게 보고 싶은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아내를 하늘로 보낸 아빠는 달리기 선수가 아닌 수영 선수로 한국 스크린에 왔다. 배경은 모두 시골이지만 수영장이 필요한 한국 버전에서는 뭔가 좀 부자연스럽다. 원작처럼 더 조용한 시골에서 비의 계절을 그리면 어땠을까 싶다. 소지섭은 나카무라 시도에 비해 넘 잘 생겼다. 티켓 파워로서는 좋은 선택이지만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면 간지나는 스타 배우보다 조연급 중에 어리숙하고 맹한 순정파 이미지를 찾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사실 손예진을 캐스팅한 것에도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소지섭, 손예진이 연기력에 문제 있는 배우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원작과는 좀 차이가 난다. 청순하고 맑은 20대 대학생 같은 여주인공이 섹시하고 능숙한 사람으로 바뀐 감이 있다. 두 배우의 팬들에겐 기쁜 캐스팅이지만, 한국 버전에서 남녀 주인공의 섹시함을 숨겨야 하는 숙제를 안고 코믹한 요소로 그 섹시함을 활용하는 부분에서 어색하게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에겐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 영화로 비칠 것이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은 원작 분위기를 많이 따랐다. 비의 계절에 잠시 엄마가 다시 찾아오는 동화 같은 집이다. 단추도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맹한 아빠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키우다가 장마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엄마가 나타난다. 원작은 숲에서 신비로운 요정처럼 나타나는데 한국판은 기찻길 작은 터널에서 귀신처럼 나타난다. 헉! 이건 좀 아니다 싶은데, 어쨌든 엄마가 나타나면서 아이는 소원을 이루고 아빠는 다시 만난 사랑을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해 꽤 긴 장마 기간에 기억을 잃은 아내와 다시 사는 재미에 푹 빠진다. 원작의 아내는 요리와 살림이 완벽하다. 집안은 차분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바뀌고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그에 비해 손예진은 터프하고 요리도 엉망이고 섹시하고 유머러스하다. 이렇게 다이내믹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전통적인 일본과 현대적인 한국의 차이일지 모른다.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져 매일 조마조마하고 다이내믹한 한국에서 일본의 어머니 분위기를 말하기가 어렵다. 김정운 교수의 책들에서 읽은 일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고 예의를 가르치고 완벽한 집안을 만드는 그리움이고 따뜻함 자체이다. 기차역에서 파는 야키벤이라는 도시락 산업이 활황하고 기차를 타고 도시락 먹으며 엄마를 생각하는 그 문화에서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고 희생하는 이미지가 한국과도 닿아 있지만, 일본은 절제돼 있다.
한국 버전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원작과 가장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절제미' 부분이다. 원작에서 아내가 일기장을 발견하고 첫사랑의 기억을 읽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접할 때 그저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뒷모습으로 처리한다.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오고 그 의미가 맞춰질 때 깊은 감동으로 밀려온다. 숲으로 사라지는 아내를 찾아가는 남편도 감정을 비틀지 않고 직선으로 달려간다. 한국 버전은 일일이 관객에게 다 설명해 주려 한 게 흠이다. 좀 더 절제하고 간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 우리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쪽을 택했을까? 인터넷 용어 중에 '핑프'가 있다. 핑거 프린스, 핑거 프린세스의 준말이다. 자신이 검색해서 찾아보고 알아보는 것보다 다 알려주기를 바라는 족속들을 일컫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영화에 절제와 생략이 너무 부족하다. 그 부족함이 스토리를 유려하게 끌고 가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음악이다. 원작의 음악 분위기처럼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정해진 모델이 있는 어려운 역할을 소지섭, 손예진, 아역 김지환이 잘 소화한 덕분이다. 원작에서 감동적인 다음 장면을 뺀 것이 아쉽다. 어리숙한 남자 주인공 직장 바로 옆 자리에서 호감을 가진 조연이 있는데, 비가 그치면 사라질 아내가 그녀를 찾아가 남편을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울먹이며 바로 부탁을 거두면서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다니, 너무 가슴 아프다"라고 하는 신에서 울컥했다. 명장면이었는데 한국 버전에서는 수영장 여직원 존재감이 빵집 친구에게 밀려 약하게 나왔다. 코믹하고 감정선을 끄집어 올려야 영화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연출이 아쉬웠지만, 시사회 관객들은 많이 울었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난 어땠을까? 반가운 멜로 영화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도 어린 수아 역의 김현수에게 쌍코피까지 터지게 한 건 좀 너무했다. 내 기억 속의 첫사랑은 손가락도 닿지 못한 소녀였는데...
이래서 남자의 첫사랑은 실제 사실과 멀어진 해석과 편집으로 만들어진, 일부 사실을 근거로 한 의미 부여이다. 그래도 그 시절 그 의미의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