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아픔과 서러움, 답답함도 석션해 가야 한다
지난 16년간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느끼며 행복한 적이 참 많았다.
잠을 못 자더라도, 아침에 어머니를 깨끗하게 치료와 목욕으로 돌봐드린 후,
샤워하고 나면 온몸이 개운했고, 어머니도 오십이 되도록 제대로 쉬신 날이 없던 인생을
편히 쉬시는 듯 좋아 보였다.
몇 번의 좌절도 있었다.
환절기 때 극심한 감기 몸살이 우리 모자가 동시에 다운돼 힘들었던 날
밤새도록 5분 간격으로 석션을 하며 지옥을 맛봤던 경험이 있고,
8년 되던 해에 집에서 요양 시설로 옮긴 후 상태가 급격하게 떨어지자
어쩔 줄 몰라 낙심했던 때가 있었다. 그 정도는 바로 대처해 가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증세로 한계점에 다다를 때
나는 내가 아는 방법을 총동원하느냐, 조금씩 질과 양을 조절하며
사람들이 순리라고 강조하는 분리를 따르느냐, 선택해야 했다.
고민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의 소모전이란 생각에 무엇이라도 택해야 했다.
병원을 옮길 때, 아이가 태어난 후 병원에 가는 수를 조절해야 할 때,
그리고 교회와 사회생활 모두 어머니 간호 테두리 내에서 결정해야 할 때,
아이들은 태어나 자라 가는 데 내 한계가 분명함에도 온몸을 던지느냐 힘 조절을 하느냐
선택해야 할 때...
내가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벅찬 지점은 세월이 흐르며 다가왔다.
나는 꿈 많은 청년기 때 어머니 간호로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추억한다.
돌아보면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쓰러지셔서 식물 상태가 되었다면
더 어렵고 괴로웠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밑바닥이 친근했다.
지금 난 내가 원해도 그 밑바닥에 내려갈 수는 없다.
주어진 여러 상황과 문제의 변수에서 가장 옳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은 내게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무엇인지에서
믿음으로 맡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려는 지점으로 옮기고 계심을 직감해야 했다.
내가 숨 쉬는 이 공간에서 동시에 숨 쉬는 가족이 계속 아프다는 것은
숨이 막히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건 가족이기 때문이다.
옆 집 어머니라면 참 안됐다는 생각만 하고 말 것이며,
직업 간병인이 환자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혈육의 고통에서 믿음은 다른 주문을 한다.
자식과 어머니가 아니라 성도와 성도의 관계로 서라고.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 점검해야 할 때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믿어왔고 오랫동안 견디도록 돌보아주셨다는 고백은 사실이나,
지금 내가 현재 이 지점에서 잘 믿고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나온 일들에 함께해 주셨다는 고백만 하면 뭐 하나?
지금 내가 믿음 안에서 맡겨야 할 부분을 맡기지 못한다면 과거의 신앙에서
현재의 불신앙으로 건너온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하나님은 내 주님인 동시에 환자인 어머니의 주님으로 인정해 드려야 한다.
이 단순해 보이는 명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제삼자가 아닌, 실제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에서 조금씩 나의 방법을 더 떼어내는 것이 맡겨드림의 믿음이다.
내 자식도 맡겨드리듯이 환자인 어머니도 맡겨드려야 한다.
그것이 어머님이 소천하기 전이지만, 지금 내가 천국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주일에 열이 39도 이상 올랐다는 병원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맡겨드리고자 했음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조절하여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밝은 얼굴의 믿음으로 대치시켰다.
나에겐 심각한 전쟁과 다름없는 싸움이지만, 초심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머니처럼
누워 있다고 생각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견뎌가는 것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이미 낫기 위해 귀 기울인다든지 잘 살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우리 모자에게서 멀어졌다.
지금 여기에 믿음이 무엇인가만 귀중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 목의 가래만 수시로 석션할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의 아픔과 서러움, 답답함도 석션해 가야 한다.
201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