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감수성과 병간호

내 영혼에 각인된 언어

by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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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민감한 감수성 때문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 어떤 말들을 곱씹어 묵상하며 밤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고, 고3 때는 단순하게 시험공부만 하면 되는데 부모님 걱정, 교회 짝사랑 그녀 생각, 집안의 경제적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난 왜 이렇게 살까에 대한 인생철학 몰입, 자라온 시절 어떤 풍경에 대한 향수, 내가 꿈꾸는 교실 이미지, 신앙과 현실, 이상과 삶 등 온갖 생각에 내신은 좋았지만 모의고사 점수는 그저 그랬다. 그 예민함으로 대학생활도 꽤 힘들었다. 건축설계가 내겐 적성에 맞지 않는 학문이었고, IVF의 활동에선 후배들 영혼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한계로 괴로워했다.


그런데 어머니 간호를 할 때는 달랐다.
세심함과 예민함으로 석션을 할 때 석션 탭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기도의 속 살을 조금도 자극하지 않고 가래만 능숙하게 빼낼 수 있고(병원에서 간호사든 간병사든 내가 가진 이 석션 감각을 가진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 표정만 보면 무엇을 원하시는지 마음에 전달되었다. 그 석션이라는 걸 하루에도 무수히 많이 해야 하지만, 한 번도 타이밍을 놓치거나 넘어가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고 화장실도 편히 가지 않으며 세심하게 집중해서 간호했다.


어머니는 지금 혈관에 바늘을 꽂을 수 없을 만큼 마르고 숨어버린 혈관에 겨우 꽂은 링거 바늘 자국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그래도 난 어머니 표정을 보며 괜찮다는 신호를 받았다. 얼굴, 손, 발끝까지 위생 관리를 하는 동안 오늘 처음 만난 간병사님이 감동받으신 얼굴로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네셨다.


"꼭 뵙고 싶었어요."
"네?!"


내 책을 읽으셨고 환자 간병 일을 하신 지 1년이 됐다고 한다. 종교가 없으신데 내 책을 읽을 감동적으로 읽고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고.

간병사님께 내가 간호하는 동안은 어머니께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곁에서 이것저것 도와주셨다. 오늘 시트도 새것으로 갈고 개운하고 깨끗한 최적의 상태로 간호를 마무리하고 기도했다.


비록 멍들고 불편한 것 많은 중환자의 병상 생활이지만 주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고통 없이 지내시도록...
우리 모자에게 필요한 것 세심히 공급해 주시리라 믿으며...

간병사님께 인사드리고 원무과에 4월 병원비를 납부했다. 도움 주신 분이 몇 분 계셔서 나는 절반만 부담했다. 많은 지출 속에도 용기 잃지 않고 버티고 감당하는 게 기적이면서 예민한 감수성의 병간호 능력을 주셔서 감사하다.

힘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과 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 호계교회 오후 예배에 초청받았다. 내 영혼에 각인된 언어들이 잘 펼쳐지고 누군가에게 예민한 감수성으로 녹아들어가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에 계신 분들께 힘이 되기를 빈다.

201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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