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관한 단문 다섯 편

병간호로 함께하던 그 시절, 마음에 핀 프리지어

by 황교진

16년 전 봄에 쓴 글이다.


1. 꽃과 어머니


고등학교 때 등록금을 기한에 맞춰 내지 못하여 담임선생님 눈치를 종종 봐야 했다.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집에 오면 안개꽃에 노란 프리지어가 담긴 향기로운 꽃병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었다. 할머니는 돈을 아무 쓸데없는 곳에 쓴다고 꽃을 사 오신 어머니께 핀잔을 주곤 하셨다.


어머니는 중간 상인들을 상대로 하는 동대문 새벽시장 일로 피곤한 하루하루를 견디셨다. 집안 한 구석을 꽃으로 장식하면서 일상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신 것 같다. 형편이 좋았다면 꽃병에 싱싱한 꽃이 자주 꽂혀 있었겠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 어머니가 사 오신 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날은 나도 기분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입시에 대한 중압감, 집안의 기둥으로서 잘 사는 가정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고단한 고교생이었던 나는, 하교 후에 엄마의 손길이 닿은 꽃을 보면 긴장이 풀어졌다. 우리 집에도 꽃향기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집에 꽃이 있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냐 마는, 힘든 바깥일과 가사 일을 병행하시는 어머니 정서에 메마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기자기함이 살아 있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코를 킁킁대면서 프리지어 향기를 맡고는 데생을 그리는 화가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꽃병에 시선을 고정해두곤 했다.


그때 용돈을 아껴서라도 예쁜 꽃 한 다발 사들고 어머니 품에 안겨드릴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엄마도 할머니처럼 내게 돈을 아무 쓸데없는 곳에 쓴다고 핀잔을 주셨을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잘해드려야지 생각하면서도 지금 잘해드릴 수 있는 조그마한 이벤트로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에 별로 섬세하지 못한 자신이 많이 아쉽다.


이제는 꽃이 가까이 있으면 해로운 중환자가 되어 계시니, 화사한 꽃 한 다발 안겨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래도 지금 어머니 몸에 더러운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도록 구석구석 씻겨드리며 은은한 향기가 나도록 유지해 드리는 나의 돌봄이 꽃 한 다발 전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나중에 어머니처럼 집안 한구석을 꽃으로 장식해 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서 가끔 꽃을 사들고 귀가하는 가장이 되고 싶다. 그때 어머니께 못 해드렸던 아쉬움도 달래며 집 안에 꽃향기의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포근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꽃은 안개꽃에 프리지어가 좋겠지!



2. 엄마의 웃음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가끔 주말에 우리 모자가 마주하는 시간엔 TV 앞에서 서로 별 얘기 없이 바보상자를 감상하고는 했다.


지금 어머니와 조금만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면, 그렇게 TV 앞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은 없을 테지만, 예전에는 TV를 함께 보며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도 늘어진 자세로 한 공간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좋았다.


어머니가 좋아한 캐릭터는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그맨 신동엽이나 영화배우 박중훈처럼 말을 아주 재밌게 하는 연예인들이다. 신동엽의 “안녕하시렵니까?”에 난 별로 안 웃는데 엄마는 조금도 지겨워하지 않으시고 항상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고 재밌어하셨다.


박중훈 씨가 여러 남녀 가수로 분장하고 나와 립싱크로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에서는 그렇게 행복해하시는 웃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좋아하며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서 귀엽고 유쾌한 캐릭터가 TV에 나오면, 부엌에 계신 엄마에게 소리쳐 누구누구 나오니까 빨리 와서 보라고 알려 드렸다.


난 엄마가 세상만사 모두 잊으시고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으시는 그 얼굴이 참 좋았다. 2층짜리 쌍꺼풀의 큰 엄마 눈이 하회탈처럼 가늘어지면서 터져 나오는 명랑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은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일주일 내내 환해졌다.


그런 엄마의 웃음을 내가 계속 터뜨려 드리고 싶어서 신동엽 씨 같은 캐릭터에 질투를 느끼면서까지 따라해 보고 연구하며 창의적 개그를 고민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잘 생겼다", "멋지다"는 칭찬보다는(그런 소리 들은 일도 없지만^^), "귀엽다", "재밌는 사람이다"란 말에 더 뿌듯해했다.


내가 아주 재밌다고 생각하며 분위기 띄우려고 해준 말에 사람들이 안 웃고 썰렁한 반응을 보이면, 남들 아랑곳하지 않고 내 말에 내가 크게 웃으며 재밌어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살아온 게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심한 좌절감(?)에 낙심하곤 했다.


엄마가 좋아하신 신동엽 씨처럼 재밌고 귀여운 캐릭터 따라잡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큰 웃음 한 방이 여의치 않으면 썰렁한 개그 여러 개로 될 때까지 웃기려고 애쓰는 나의 꾸준함이 엄마에게 행복한 웃음을 자주 전해드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었다.


순발력을 연구했던 절절한 과거가 있다. 원래는 너무나 명랑하고 웃음 많은 천성을 지닌 엄마가 생활고의 그늘에서 웃음이 이사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지켜 드리고 싶어서 시작된, 내 속 어딘가 숨어 있는 ‘개그맨의 피 찾기’는 계속 열심히 탐구하며 연마 중이다.


언젠가는 엄마의 그 큰 눈이 작아지며 엷게 퍼져나가는 미소에서 폭소로 상승하는 시원한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그런 웃음이 돌아올 뿐 아니라 더 행복하게 웃으실 수 있도록 지금도 난 재밌고 귀여운 캐릭터가 되려고 주변 사람을 모르모트 삼아 계속 연구 중이다.



3. 편한 운동화를 신으신 어머니


1994년 봄에 군에서 제대를 하고 여러 고민을 하며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 가족여행이 마지막 여행이었다. 가을의 설악산은 아름다웠다. 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편안한 러닝화를 빌려 신으신 어머니는 발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새벽시장 일을 마치자마자 백화점을 다니시며 발품을 팔아 유행 경향을 파악하면서 숙녀복 도매 일을 하신 어머니는 불편한 구두에 발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고 산 중턱에서 파전 같은 음식을 사 먹고 가만히 어머니 손을 잡고 설악산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오는데 괜스레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착착 감겨왔다.


운동화를 거의 처음 신어 보신 어머니, 딱딱한 구두에 상해 가는 발로 가족을 챙기며 살아오신 엄마에게 평생 편한 운동화만 신게 해드릴 순 없을까? 생각하며 새어 나오는 눈물을 들킬까 봐 두 눈 질끈 감고 한숨을 지었다.


난 그때 제대하면 뭐든 잘 해낼 줄 알았고, 마치 바늘 끝과 같은 모습으로 사회의 어느 곳이라도 마음대로 찔러대며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복학을 앞두고 몇 달 남겨둔 그때 마음을 채운 건 두려움과 공허함뿐이었다. 어머니는 참 힘든 일상을 참아내고 가족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하며 사시는데, 난 정말 무엇인지 몰라 가슴만 아파왔다.


강릉 쪽으로 가서 방파제에 앉아 오징어 회를 먹다가 혼자 파도가 쳐 올라오는 바다 쪽에 가까이 가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 속의 고민은 갈피를 못 잡고 어지럽게 괴롭혔다. 현역 복무기간을 마치고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있으면서 왜 그리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려운지, 많이 묻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채울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리지 말고 편한 운동화 한번 신어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서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일상의 의욕을 채웠다. 달려갈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공허하고 인생의 좌표를 찾지 못하며 고민했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나의 소명은 분명해졌다. 어머니 발은 매일 해드리는 내 발마사지 기술로 상한 흔적 없이 아주 깨끗해져 있다.


가끔 엄마 발바닥의 비누 향을 맡으며 내 볼에 비벼 보고 뽀뽀도 해드린다. 식물상태의 환자로 7년이나 걷지 못하여 종아리 근육이 줄어 야윈 모습이지만, 지금 어머니의 발엔 내 존재가 곧 편한 운동화다. 이보다 더 좋은 엄마 신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머니! 저를 신고 늘 편안하게 쉬세요. 다리 아파가며 피곤해하시던 발품도 필요 없고, 잠들 시간 없이 딱딱한 구두 신고 걸어 다닐 일 없습니다. 내가 계속 엄마의 가장 편한 운동화가 될게요!



4. 나 홀로 음식을 챙겨 먹으며..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서 삼수째 입시를 준비해 전기 시험을 본 후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왔을 때다. 이전에 시험 결과를 보러 갈 때는 혼자서 확인했는데, 그날은 엄마가 같이 동행하고 싶다고 하셔서 발표장인 캠퍼스의 운동장까지 함께 가서 합부를 확인했다.


사실은 전날에 전화 ARS로 내가 떨어진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시험을 잘 치른 듯한데도 삼수 끝에 또 낙방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명단을 직접 확인해서 2지망이나 추가 합격 명단을 확인하고 싶었다. 분명히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가보았다. 결과는 추가합격 순위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전후기 분할모집까지 지원하면서 그동안 한두 번 입시에 떨어진 경험이 아니어서 덤덤히 불합격을 받아들이고 다시 서울 소재의 전후기 분할 모집 대학 중에 선택해 시험을 치를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나오는데...

옆에서 엄마가 서럽게 우시는 것이다. 그동안 수험생 엄마로서 밥도 잘 챙겨주지 못하여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며 미안하다고 하면서 펑펑 우시는데, 너무나 죄송했다.


도리어 내가 괜찮다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며 뭐, 그까짓 것 가지고 그러시냐고, 나 아직 안 죽었다고, 한 달 뒤에 있을 후기 시험 쳐서 꼭 들어갈 거라며 손을 잡아 드렸다.


어머니는 계속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면서 이러다 그냥 군대에 가게 되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떨구셨다. 당시 걸프전이 막 일어난 때라 입대하면 걸프전에 참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위기감까지 팽배해 있었다.


어머니는 그날 맛있는 거 먹자며 고기를 사주시고,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잘 유지하라고 비싼 브랜드의 오리털 파카까지 선물해 주셨다. 휴우~ 삼수까지 해서 전기대 시험 떨어진 거 확인한 날, 어머니께 바로 고기 대접받고 옷 선물 받은 자식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그리고 한 달 후 안전한 지방대에 가라는 어머니 부탁을 무시하고, 전기 때보다 더 경쟁률이 치열한 분할 모집 대학의 건축공학과에 지원해 합격하고 말았다!


엄마는 가게 문 일찍 닫고 들어오셔서 상다리 휘어지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 파티를 열어 주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삼수 시기까지 지속된 미련한 수험생 아들, 손수 차린 밥 못 먹인 한을 푸시려는 듯 정성을 다해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축하해 주셨다. 난 엄마의 수라상을 받으며 좀더 일찍 제때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접고 마음껏 즐거워했다.


사실 엄마는 주일에 온 가족이 교회를 다녀오면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집에서 꼭 고기를 구워주셨다. LA갈비 같은 메뉴로 든든하게 챙겨 주셨는데, 곁에서 밥을 챙겨 주지 못하는 한 주간의 시간에 늘 미안해하셨다.


그래서 요즘 침상의 엄마에게 자주 드리는 인사가 “나 밥 잘 챙겨 먹고 있어요!”다.

제일 걱정하실 부분이 무엇인지 뻔히 보이니까 인사말로 밥 잘 먹고 있단 얘기부터 꼭 해드린다.


가끔 지우들에게 삼겹살을 대접받곤 한다. 예전에 어머니와 고기를 먹을 때와 요즘 친구들과 먹을 때는 큰 차이점이 있다. 누군가 구워주며 섬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고기는 먹기가 참 불편한 음식이다. 친구들과 고기를 먹을 때 집게를 들고 굽는 역할로 자원하면 맛있게 익은 건 다 뺏기고 탄 거나 찌꺼기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엄마가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을 때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친구들이 모두 이상한 놈들은 아니지만..^^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러하신 어머니, 바깥일을 하시느라 손수 챙겨주지 못하는 식사 때문에 늘 미안해하신 어머니, 아들은 잘 익은 맛있는 부위를 먹는 동안 주로 탄 거나 찌꺼기 드시면서도 늘 즐거워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를 위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수고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을 위해 애쓸 수 있는 시간을 듬뿍 주고 계신 어머니가 늘 고맙고 사랑스럽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열심히 잘 챙겨 먹는다. 건강하게 간호해드릴 체력을 얻기 위해서 풀만 먹고도 가장 힘센 짐승인 코끼리를 생각하며 그린필드의 밥상이라도 만족하면서 열심히 먹는다.


삼겹살 먹으러 나오라는 친구의 전화가 걸려오면 절대 튕기지 않고 쏜살같이 나간다. 그리고 고기는 내가 굽지 않는다!^^



5. 필요


어머니는 내게 옷을 참 잘 사주셨다. 내가 원하기 전에 항상 멋지고 좋은 옷을 골라서 근사한 모습의 아들로 코디해 주시며 내 속에 있던 힘든 마음을 적절한 타이밍에 기쁨으로 바꿔 주곤 하셨다. 난 어머니 덕분에 옷을 고르는 방법도 모르고 살 필요도 느끼지 않은 시절부터 베스트 드레서 소리를 들었다.


외출하기 전에 어머님이 집에 계셔서 배웅해 주실 때는 항상 옷차림에 대한 조언을 꼼꼼히 해주시고, 어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 내어 주시며 옷매무새와 단추를 만져주셨다. 무슨 일로 지쳐서 축 처진 몸으로 집에 오면 내 책상 위엔 청바지나 티셔츠 등 예상치 못한 선물 쇼핑백이 올려져 있곤 했다.


많은 대화가 없어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계신 듯 항상 필요를 알아서 채워 주셨다. 한밤중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생각에 무심코 냉장고를 열어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몬드봉봉이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어서 우리 모자의 기막힌 조화에 탄성을 지를 때가 많았다.


주일 아침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옷차림에 칭찬해 주시는 엄마의 눈빛을 느끼며 함께 손잡고 교회에 갈 때가 제일 행복했다. 예배당에 들어서서 착석하자마자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훨씬 길게 기도하셨다. 일찍 기도를 마친 나는 예배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성경책을 뒤적거리다가 심심해서 기도하는 엄마 콧등을 검지로 슬쩍 건드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잠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어머니는 계속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으셨다. 지금 돌아보니 난 때때로 참 별나고 유치한 녀석이었다. 기도드리는 어머니를 방해하던 내가 지금은 호스피스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 중이라니! 어머니의 그 긴 기도가 요즘도 내게 계속되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비전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필요를 적절한 때에 채워주신 어머니를 위해 내가 어머니의 필요를 채워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다녀야겠단 생각으로 외출할 때마다 꼼꼼히 코디에 신경을 쓴다.


생물학적 내 나이와 상관없이, 힘든 고난을 견디고 있는 사람인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젊고 환한 모습으로 코디하는 것을 즐긴다. 어머니가 좋아하신 스타일이 어둡고 우울한 모습이 아닌, 밝고 경쾌하면서도 진중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기에, 난 항상 건강한 모습의 밝은 차림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경제성, 디자인, 질감 그리고 몇 년이 지나도 근사하게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사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기 절제력이 있고 은은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오랫동안 신뢰감이 변치 않는 그런 사람과 만나 결혼도 할 것이다.


같이 나이 먹어갈수록 더욱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건강한 배우자와 함께 내가 잘 살길 바라는 기도를 드린 어머님의 소원을 이루어갈 것이다. 무조건 고급 칼라의 매력적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하며 오래 시간 함께 있을수록 전혀 싫증 나지 않고 편안하며 부드럽게 잘 맞는 좋은 옷과 같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날을 기대한다.


때에 맞춰 내 필요를 베스트로 채워 주신 어머니는 지금도 내가 꿈꾸며 기대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고 기도로 지원해 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내게 일어나는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면 눈을 세 번씩이나 깜빡거리며 기쁨을 표현하시는 어머님께 귀한 며느리도 보여 드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얼른 오기를 기도한다.


어머니처럼 나도 아내와 아이들을 베스트 드레서로 코디해 주고 싶고, 내가 길게 기도할 때 몰래 다가와 내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장난치는 못된 아들도 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괴로운 것을 그대로 토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