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창업입문과정에서 강연한 이야기
<혁신의 모험가 소셜크루 창업교육과정> 첫날 강의를 맡았다.
서울여자대학에서 오전 10시부터 30명 정도 신청자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었고, 나는 1시부터 2시 반까지 <소셜벤처, 길을 묻다>는 제목으로 소셜벤처 아이디어 경연대회 입상 선배로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강의하기로 예정됐다.
수요일에 자료집에 실을 원고를 넘기고, 금요일 하루 꼬박 들여 PPT를 만들었는데 무려 70장이 됐다. 기존의 살아온 경험 이야기와 사업계획서, 그리고 내가 강태호 이사님과 추진한 비즈니스 실행을 정리하고 전략안과 강점, 약점 분석까지.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강연장으로 운전하며 돌아보니 올해 첫 오프라인 강의인 특별한 시간임을 알았다. 안양에서 서울여대까지 대략 1시간 반 운전 길이었는데 도중에 막히고, 길을 두어 번 잘못 들어 돌아가기까지 하여 2시간 걸려 오전 11시 넘어 겨우 도착했다. 처음 와본 서울여대 부근의 높이 솟은 가로수들이 인상적이었고, 코로나 시기이지만 도로에 차량이 많아 겉으로는 바이러스 폭풍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강연장 건물인 50주년 기념관에 들어서며 발열 체크, 문진표 작성을 하며 긴장이 되었고, 72년생부터 대학 재학생까지 30명 정도 모인 강의실은 소셜벤처를 공부하려는 열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에 입장해 뒷좌석에 앉아 내가 전할 PPT를 계속 연구하는데 참석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이었다. 처음으로 마스크 쓰고 강의해야 하는 것도 어색하고,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어야 하는 책임감도 어색하고, 게다가 이번 주에 5년 만에 시력검사를 하고 새로 맞춘 안경도 피팅이 허술한지 자꾸 콧잔등 아래로 내려와 불편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낮아진 마음과 부담감이 강연자인 내게는 좋은 재료다. 자부심보다는 이런 강단에 내가 가당키나 하나, 하는 생각이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게 되고 그 자체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1시간 30분 동안 스트레이트로 <1부 나의 이야기>, <2부 그래서 소셜벤처의 길로>를 강의했는데 시간이 모자랐다. 내가 착용한 천 마스크는 말을 할 때 자꾸 흘러내려서 현장 스태프분에게 덴탈마스크를 요청해 바꾸어 쓰고 불편함 줄여 강의할 수 있었다. 누군가 강연자가 답답하지 않은 코로나 마스크를 개발해 내면 수익이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1부 나의 이야기 시간이 예비 창업가들에게 의외로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부 실버임팩트 창업의 시작과 그 과정은 내가 급조해 만든 PPT 화면을 사진으로 찍는 수강생이 많아 의외였다. 3년 전에 연구하고 고생해서 분석한 자료들을 지금 처음 본 예비 창업가들에게는 기록하고 싶은 유용한 자료로 읽히는 게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나의 기업가 정신의 결론부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마지막 연으로 요약했다.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말하겠지
언젠가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내가 선택해서 가는 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갔기 때문에 모든 게 (올바르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시간이 모자라 질의응답을 받을 시간을 깎아 먹었지만, 많은 수강생이 내 명함을 받아 갔고, 따로 다가와 질문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마치고 정리하는 걸 도운 후 1층의 스벅 카페에서 비전웍스 김민표 대표님과 차를 마시며 비전웍스 분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계발해서 소셜벤처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연을 이어가자는 얘길 나누며 기쁘게 수락했다.
마음에 불씨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더웠지만, 땀 흘려 준비하고 강연한 보람이 있었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열망이 내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실 모든 돈벌이의 기초에는 사회 문제 해결이 들어 있다. 그 문제 대상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절실하냐에 따라 사회적기업과 일반기업으로 나뉜다. 나는 중환자 가족의 아픔에 대한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 출판으로든 상담으로든 이 불씨는 계속 지필 것이다.
장기간 집에 있으며 고민하다가 작년 가을 계명대 채플 이후 오랜만에 청중 앞에 서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살아 있음이... 서울여자대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합정동 단골 안경점에 들러 피팅을 새로 하고 노안용 근거리 안경의 문제도 해결했다. 실수로 내 렌즈를 엉뚱한 도수로 끼워 넣은 것이다. 강연 후의 기쁨 때문인지 크게 사죄하는 직원분을 격려해 드렸다. 빨리 문제 원인을 발견해서 기쁘기만 하니 괜찮다고! 사람은 기쁨과 감동이 있어야 너그러움과 포용력이 유지된다.
주일로 향하는 새벽인데 잠이 안 온다. 고민은 여전히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