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은 없다
요즘 대중교통 시간에 오디오북을 듣는다.
최근에 선택한 책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홍주현 저)이다.
이 책의 1장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하기 싫은 이유'에서 한 부분을 듣고 내용을 대략 옮겨 본다.
(...)
근사해 보이는 일만 성공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찮아 보이는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 있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사람들이 꿈꾸지 않는다고 보잘것없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일은 가치 없다고 여기는 통념을 깨트리는 직업이 있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관심받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과연 인정받는 일만 가치 있는가?
하찮아 보이는 일은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관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내 존재 가치가 타인에게 달려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소홀히 할 만한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령 페이지터너를 보자.
우리는 음악공연을 감상할 때 연주자를 중요시하고 주목한다.
그런데 연주자 옆에는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있다.
페이지터너는 화려한 옷을 입어서도 안 되고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관객이 페이지터너의 존재를 모르게 할수록 유능한 페이지터너다.
언뜻 보기에 아주 작은 일이지만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연주자가 원하는 정확한 시점에 악보를 제대로 넘기느냐에 따라 연주의 질이 달라진다. 만약 페이지터너가 악보를 제때 넘기지 못하거나 악보를 떨어트리거나 페이지를 넘기면서 연주를 방해하면 공연을 망친다.
페이지터너는 음악전공자여야 할 만큼 곡과 연주자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고작 페이지를 넘길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격요건이 만만치 않다.
세상에 하찮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기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
오디오북으로 이 내용을 듣고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페이지터너를 넘돌이, 넘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식 자체가 참 무지하고 사소하기 때문에 페이지터너에 사명을 가지고 음악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계를 걸고 있는 편집자 직업이 꼭 페이지터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필요한 교양과 지식의 공공재를 만드는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돈이 별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신입을 잘 뽑지 않기도 하여 인력수급도 되지 않는다. 월급은 10년차 편집장이 되어도 대기업 초봉에 훨씬 못 미친다.
이 책의 페이지터너 부분을 듣다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 온 많은 순간이 스쳐지난다. 저자의 뒤에 숨어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영광은 저자가 받더라도 뒤에서 조용히 흐뭇해한 많은 기억이...
지금처럼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은 출판계에서 분투하며 편집자 직업을 보잘것없다고 여긴다면 내 일을 스스로 하찮은 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지터너처럼 악단의 음악이 제대로 울려 퍼지도록 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어떻게든 다시 버티고 견뎌야 할 것이다. 넘돌이 취급에 악보 넘기는 일을 스스로 바보처럼 여기고 있다면 결코 좋은 음악을 공명시키지 못할 것이기에.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여기기 쉬운 출판 환경이다. 한 출판사는 부장급 이상 급여를 대폭 삭감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코로나19 중에 몇 개의 중견 출판사는 문을 닫을 것 같다는 예측도 현실화될 것 같다. 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지키고 견뎌야 한다. 지금 나는 넘돌이가 아니라 페이지터너다. 억지로라도 존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