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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Nov 03. 2020

박지선을 추모하며

누군가가 손 내밀 때 손 잡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이정헌 작가 그림


어제 박지선 씨 소식 듣고 큰 충격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오래간만에 신간 출간 일정 앞두고 교정에 몰입 중이었는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뇌피셜적 분석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떠난 사람이 지닌 깊은 아픔을 어떻게 누가 알 수 있을까. 게다가 모친과 함께....


저녁도 안 먹고 6시에 누웠다가 새벽 2시에 깨었다. 가슴이 서걱거렸다. 일을 해야 해서 깼지만 또 한 시간을 멍하니 있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좀 오버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문제의 책임이 한국 교회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 사랑, 이웃 사랑, 공감,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니까.


페친 중 한 목사님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슬퍼하시는 것을 보고 내 마음도 쓰렸다.


다수의 교회는 허구한 날 반동성애, 반이슬람, 반공만 부르짖다가 세월호 유가족 돕는 목사를 제명시키기까지 하고, 여전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클리셰에 빠져 있다.


시대를 읽을 줄 알라고,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인문학적 소양 좀 갖추라는 말도 다 필요 없다. 그냥 사람을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 이웃의 아픔에 관심이라도 있는지. 돈과 탐욕이 원동력은 아닌지.


대한민국에 이렇게 극단적 선택이 많고 행복하지 않은 데 대한 깊은 성찰과 회개를 한국 교회가 먼저 가지지 않으면 답이 없을 것 같다.


교회가 크면 그 안에 깊은 아픔의 문제로 신음하는 숫자도 크다. 케어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탈진할 것이다. 그런데도 외형적 대형 교회를 추구한다. 그 외형은 아픔에 대한 외면과 연결돼 있다. 열 가정이라도 깊이 사랑하고 케어해 본 적 있는 리더라면 결코 사람 많이 모이는 걸 선호할 수 없을 것이다.  


소탈하면서 깊은, 옆집 누나와 언니 같은 모습으로 살다 간 그녀에게 왜라고 묻기 전에, 마지막 순간에 손 내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선택하는 그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외면의 얼굴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지선 씨, 오늘 생일 축하해요. 하늘에서 꼭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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