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을 잘 품고 더 큰 오해를 유발하지 않게 풀고 가는 포용력
점심시간에 식사를 거르고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는 습관이 있다.
요즘처럼 쌀쌀한 계절엔 50분 정도 운동하고 오후 업무에 들어서면 몸도 머리도 가벼워지고 딱 좋다.
20분 정도 러닝하며 트래드밀에 설치된 TV를 보며 편집 중인 신간 제목과 마케팅 아이디어도 고민하는데 단박에 해결될 때가 많다.
러닝머신 위에서 케이블 드라마 <송곳>을 보았다.
처음 본 그 드라마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아이러니하게도 JTBC에서 대기업의 구조악과 싸우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늘 본 내용은 삼성 조직을 불편하게 할 만한 노동자들의 조합 결성과 사용자의 횡포에 저항하는 얘기다.
JTBC가 종편의 경쟁력과 차별화를 위해 인기 웹툰 원작의 이 드라마를 기획했다는 예상이 든다.
그런데 마음에 송곳처럼 딱 꽂힌 장면이 있다.
비정규직 여자가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 중인데 남친(인 듯한)이 뜯어말린다.
"그거 다 정규직들 밥그릇만 크게 해주는 짓이야! 다 쓸 데 없어. 그만둬!"
그럴 리 없다는 여자가 파업 천막으로 오자 노동자들끼리 큰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배신하고 사용자의 부분 복직 협상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남친의 말대로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70퍼센트 복직 안을 수락해 장기 투쟁을 끝내려 했다.
비정규직 대표는 같이 복직하도록 싸워주지 않고 변절한 것에 분노했고, 정규직 대표는 이 안을 수락한 후 점차적으로 복직 안을 협상하자는 뜻으로 고성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다. 힘없는 비정규직은 울화통만 터진다.
빨간색 투쟁 조끼를 입은 여자는 크게 실망하여 힘없이 회사 정문 앞을 걸어간다.
정문을 지키는 사용자의 비노조원들은 까만색 옷을 입고 있다. 그녀를 향해 한마디씩 조롱한다.
"야!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같이 일한 사이끼리 그렇게 모른 척하고 다닐 거야?"
"그래서 시집은 가겠냐?"
"이 아저씨들이 누굴 보고 인사를 하네 마네야!"
그러면서 독백한다.
'우린(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같은 색인 줄 알았는데... 차라리 저들이 그들보다 낫다. 저들은 나 같은 비정규직이 힘들다는 건 아니까!'
노조의 분열을 본 그녀의 모습에서 떠오른 문구가 있다.
같은 편에게 겪는 상처가 반대 편에게 당하는 아픔보다 크다
기독 시민 운동가들도 같은 진영의 오해가 이단이나 악질들의 공격보다 훨씬 아픈 경우를 종종 겪는다.
함께 운동(무브먼트)을 하면서 같이 손잡았던 사람이 등을 돌릴 때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얻어맞는 타격보다 훨씬 고통스러워한다. 골리앗과 싸우려는 중에 다윗끼리 들이받는 격이다.
같은 색이면서 아픔을 더 모르고, 같은 온도인 줄 알았는데 극한과 적도의 온도로 드러날 때 훨씬 괴롭고 분하게 된다.
그래서 아군끼리는 잘 풀고 가는 게 칼날을 가는 것보다 중요하다.
내공은 상대를 쓰러트리는 강한 힘과 논리에 있는 게 아니라 내 편을 잘 품고 더 큰 오해를 유발하지 않고 풀고 가는 포용력에 있다.
멘탈력은 창끝의 방향을 정확히 조준한 뒤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 마음의 폭을 넓히는 악수를 먼저 내미는 용기의 수준이란 생각을 해본다.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