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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Aug 14. 2021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8화

가족의 아픔과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



최근 알바를 뛰기 시작한 특수 청소에 대한 교육을 성남에서 받고, 판교에서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떠느라 집에 늦게 도착했다. 잠들기 전에 <슬기로운 의사 생활 2> 본방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잠깐만 채우려다 결국 1시간 50분이나 되는 긴 드라마를 다 보고 새벽 3시에 잠들었다.


시즌1과 시즌2 방영분을 통틀어 가장 눈물이 많은 나온 회차가 시즌2 8화였다. 시즌1을 몰아서 정주행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어머니는 어쩌면 삶의 의지를 어느 순간 포기하셨을 수도 있다고. 드라마 보다가 괜히 든 생각일 수 있지만, 시즌 1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잃어버린 환자가 나오는 회차에서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나는 그렇게 죽고 싶다는 말을 엄마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병간호 중에 발견한 작은 수첩에 쓰인 어머니 일기에서 읽을 수 있었다.


시즌2 8화는 소아외과 안정원의 어머니, 신경외과 채송화의 어머니, 그리고 화면에 비치진 않았지만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의 어머니가 모두 아프신 이야기다. 정원의 어머니 로사는 지난 회차부터 이야기 방향이 치매로 가고 있다가 다행히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판명됐다. 엄마가 그렇게 몸이 안 좋은 줄 몰랐던 정원이 자책하는 모습에서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부근에 자취방을 정해놓고 졸업작품에 전념하다가 어머니 건강이 급격히 무너져갔던 것을 몰랐을 때가 떠올라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다행히 아들 친구가 탁월한 신경외과 의사인 채송화였고, 전 병원장 가족으로 VIP실에서 잘 치료하면 낫는 병이었다. 병원 이사장인 친구 종수가 간병인 역할로 거들고,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이 아들과 연애 중이니 수술을 앞두었어도 로사의 표정은 그저 행복하다. 


정원이 엄마에게 "이제 엄마의 생을 사세요. 매일 화양연화로 사세요. 치매였어도 내가 매일 아들이라고 말씀해 드릴게요.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요" 하는 대사에서 정곡을 찔린 기분으로 울었다. 한참 전에 내 책을 내고 화제가 되어 거의 매일 언론사 인터뷰를 할 때, 어머니 의식이 회복되거나 이전에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로 돌아가면 무슨 말씀을 해드리겠냐는 기자들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신경외과 채송화 선생의 엄마는 파킨슨 병에 걸린 것으로 나온다. 병원 일에 바빠서 엄마의 외래진료를 존경하는 교수께 연결만 해드리고 자신은 얼굴도 내비치지 못하다가 파킨슨 병에 걸린 엄마 소식을 들은 채송화는 몹시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딸이 신경외과 의사여도 엄마의 파킨슨 병을 미리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삶의 절망과 고통을 견뎌야 하는 모습에서 난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입 3수를 하지 않고 제때 입학하고 졸업해서 돈을 벌어 엄마의 새벽 옷장사를 쉬게 해드렸다면... 군대를 현역으로 가지 않고 평발을 제대로 체크해서 방위로 빠져서 1년이라도 일찍 졸업해 IMF 전에 취직했더라면...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보고 일찍 사회생활하며 엄마가 시장에서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해 드렸다면... 그냥 그런 가정들이 머리를 스쳤다. 


울면서 감상하다가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로사가 치매가 아닌 것을 확인 후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쏟아놓을 때  너무나 부정적이었다. 전국에 200만 명 가까운 치매환자가 있다. 초기 치매인 경도인지장애일 때 치매안심센터의 대응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치매검사 또한 MRI와 3단계 모두 무료이다. 두려운 병에만 초점을 맞출 시기가 지났다. 고령 사회에 진입 후 흔히 걸릴 수 있는 병으로 대비하고 인식을 개선할 때다. 검사받기 두려워하는 것이 결국 중증 치매환자의 수를 급격히 늘린다는 것을 드라마 작가가 좀 파악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노망, 저주와 죽음의 병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아쉬웠다. 


또 하나는 연세가 70대 후반인 어머니의 뇌종양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로 보호자 남매가 싸울 때, 집의 돈을 마구 가져다 쓰며 사업을 해온 아들은 수술을 반대하고, 어머니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때부터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온 딸은 수술을 재촉한다. 수술을 안 했으면 하는 아들이 패륜처럼 비치는 부분이다. 물론 환자인 어머니는 겉으로는 수술을 안 하고 싶어 하지만 속내는 수술받고 더 오래 살고 싶은 눈치다. 이 부분은 당사자인 어머니 뜻이 가장 중요하고, 여든 가까운 나이의 뇌수술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돈과 간병하는 보호자의 고충 문제보다는 환자의 고통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뇌출혈로 뇌수술 후 의식이 없는 어머니를 20년 간호한 경험으로 나는 나이 든 어르신의 뇌수술은 말리고 싶다. 종종 보호자들로부터 기관삽입에 대한 문의를 받는다. 목을 뚫은 뒤 회복되어 티케뉼라를 제거하고 코로 호흡하는 환자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석션의 고통을 환자와 보호자가 짊어지며 장기간 정신력과 체력으로 버텨야 한다. 석션을 한 번 시작하면 보호자는 매 순간 긴장하며 자기 시간을 포기하고 간병해야 한다. 나는 환자의 회복이 어렵고 점차 안 좋아지는 상황이라면, 기관삽입을 하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 결정하시도록 조언해 왔다. 


60대 이하의 뇌수술은 주치의와 대화로 결정해야겠지만, 여든이 다 된 환자의 뇌수술, 암수술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유교 윤리가 깊이 박힌 한국은 부모의 수술을 주저하는 보호자를 나쁜 인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극적 치료를 결정할 때가 있고 소극적 치료를 결정할 때가 있다.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기계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환자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실까? 이런 모습으로 하루를 살기보다 주변 사람과 인사 나누고 떠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게다.


암수술 환자의 마지막 단계에 쏟아지는 비용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보다 적절한 마지막이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나는 나이 들어 큰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가 되면, 더 살기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 연명 치료에 대해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을 선택하련다. 내 두 아들이 성인이 되면 미리 얘기해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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