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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Sep 29. 2021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그녀들이 당긴 댄스 시위

이것이 여성 댄서 크루의 자존심이다!

이미지 출처: YTN [Y이슈]


JTBC <슈퍼밴드 2>만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엠넷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줄여서 스우파).

추석 명절 기간에 우연히 하이라이트를 본 뒤로 완전히 푹 빠져 들었다. 이제 내가 본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중에 제일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팬텀싱어>와 <스우파>다. 이 글을 쓰는 현재 4회까지 나왔는데 이미 많은 팬덤이 생겨서 유튜브에서는 난리가 나 있다. 노래를 다시 듣는 것과 춤을 다시 보는 것은 확실히 춤 쪽이 매력적이고 지루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비주류로 여겨져 온 댄서가 스우파 덕에 아이돌 가수 이상의 인기와 관심을 받고 있다. 모두 8개의 크루가 참여해서 엠넷이 정한 룰로 경쟁하며 4회에서 한 팀이 떨어졌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인 이채연(쌍둥이 동생 채령은 ITZY 멤버)이 유일하게 아이돌 가수로 원트의 멤버로 참가해 배틀에서 계속 지목당하는 모습이다. 마치 걸그룹이 어디 댄스 배틀러로 올라오냐며 선긋기 하는 분위기다. 방송에서 댄서들은 센터에 있는 가수의 노래 분위기를 띄워주는 백업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단연 주인공이다. 채연은 타 크루의 댄서들에게 여러 번 지목당하며 패배를 연이어하다가 결국 1승을 거둘 때 눈물을 터트린다. 유일한 아이돌로서의 멘털을 챙기며 무대에서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사실 채연도 춤 잘 춘다는 소리 들으며 활동해 왔는데 말이다.


여기 출연한 댄서 크루들은 독보적인 자존심과 언더에서 쌓아온 실력에 대한 아우라가 있다. 특히 내가 눈여겨보는 크루는 스트릿 댄스의 정수를 보여주는 홀리뱅과 코카앤버터다. 다른 팀들이 방송안무에 가깝다면 이 두 크루는 그야말로 스트릿 댄서의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팬덤이 이제 형성되고 있어서 유튜브 좋아요와 조회수로는 경쟁력이 약한 팀이기도 하다. YGX처럼 대기업 소속도 아니니.



두 리더가 배틀하는 장면은 스우파 최고의 명장면이다.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의 리헤이는 오랜 기간 같은 팀으로 활동하며 허니제이의 리더십으로 함께했는데 어느 순간 관계가 틀어져 각자 활동해 오다가 오랜만에 이 프로그램에서 만났다고 한다. 제자 리헤이가 스승인 허니제이를 지목하며 배틀을 했다. 선공과 후공에서는 무승부를 이뤘고 같은 음악으로 동시에 춤추는 재대결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둘이 똑같은 동작을 연이어한 것이다. 마치 한 팀으로 퍼포먼스를 한 것처럼. 춤의 경지에 이르면 어떤 무빙을 하는지 확실히 보여 주었다. 승부에 상관없이 둘이 꼭 끌어안은 뒤 퇴장하는 모습에서 댄스 파이터로 이어진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아쉬운 점은 엠넷이 기존의 오디션처럼 자꾸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부분이다. 센 언니들의 춤 배틀이라는 콘셉트를 재밌게 보려면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적대감, 비아냥, 경쟁심을 부추기는 모습은 보기가 안 좋다. 제일 맏언니인 모니카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전에 동생들이 더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프로그램에서는 꼰대처럼 그리고 있고, 얼짱 리더 노제의 외모를 지나치게 강조해 비주얼로 주목시키려는 연출은 거슬린다. 유일한 비걸인 예리가 브레이킹 무빙을 하기 어려운 유리 바닥 무대를 설치해 놓고 배틀을 시킨 것도 방송사의 난센스로 보인다. 엠넷이 기존의 오디션 프로에서 악마의 연출과 승부 조작 노출로 암넷이라는 혹평을 받은 것을 계속 시청률로만 가리려 하는 게 아닌지.


케이팝이 있기 이전에 케이댄서들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이제 이들이 아이돌의 아이돌로 스타성을 가지는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 의미 있어 보인다. 솔로 보컬의 정형화된 노래 경연보다 자유로운 춤이 매력적인 것은 <히든싱어>와 <슈퍼밴드>에서 보여준 팀워크로 화합해 가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4회에서 코카앤버터가 총점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 위기였을 때 5전 3선승제로 한 배틀에서 노제의 웨이비를 3대 0으로 깨트렸다. 다리 부상이 있던 리헤이가 팀을 사지에서 건져내려고 온 힘을 쏟은 춤은 예술 그 자체였다. 기운이 없을 때 유튜브에서 코카앤버터의 리헤이와 제트선의 춤을 보면 힘이 난다.




중학교 때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이 등장하며 전국에 브레이킹 댄스 열풍이 불었다. 교내에서 춤에 푹 빠진 친구들이 있었다. 소풍이나 체육대회에서 어설픈 비보이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잘 추는 아이가 있었는데, 당시는 유튜브가 없던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춤 연습을 해서 전교생 앞에서 맹위를 떨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방송에 나와서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 댄서, 가수들을 보면 자기 우물을 꾸준히 파서 빛을 보는 감동이 주는 기대감이 있다. 시대가 우울하니 이런 기대감이라도 가지려 하는 건지 모르지만, <슈퍼밴드2>와 <스우파>에 몰입한 순간은 그나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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