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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May 11. 2018

트립 투 스페인 The Trip to Spain

아는 만큼만 웃을 수 있는, 그들만의 수다와 인생

 




브런치무비패스로 본 영화 중에 처음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코미디 영화이고 이미 검증을 받아 세 번째 나온 시리즈물인데 난해했다. 1965년생 두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드립력은 역대 브로맨스 영화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라이크 크레이지>처럼 자세한 대본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대사를 치는 듯 두 배우의 전달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케미가 대단한 줄은 알겠다. 그들보다 다섯 살 아래인 중년으로 일견 공감되면서 부러운 부분도 있었다. 친한 친구 둘과 스페인에 배를 타고 가서 레인지로버를 운전해 곳곳을 둘러보며 맛집을 경험하다니! 이 얼마나 화려한 일탈이며 낭만인가.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중년 관객인 내게 그 화려한 수다가 웃음을 유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와 대중문화, 예술을 넘나드는 대사는 그 둘만의 재능이고 지능이다. 연기력도 기가 막혔고, 무언가 굉장히 고급스러운 유머와 척척 맞는 상황 설정은 감탄할 만했다. 스페인 음식점 셰프의 손놀림과 서빙은 신선했고, 특유의 설명을 곁들인 음식 맛을 보는 두 배우의 얼굴은 배틀트립 출연 연예인들의 감탄 이상으로 신선했다. 그런데 나는 2016년 사망한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의 저음 보이스를 흉내 내는 초반부의 드립에서 크게 한 번 웃고는 나머지 장면들에서는 고민에 빠졌다.



배경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영국의 대표 배우라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을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재 개그가 한국의 젊은 친구들이 아저씨들 향해 썩소를 날리는 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풍광에서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곳을 선택하고, 매일 새로운 맛집에서 주변 손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떠들어대는 두 배우의 천연덕스러움은 기막힌 설정이다. 그런데 뭘 알아야 웃지 말이다. 자막으로는 전달이 안 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트립 투 스페인>이 스페인 앓이를 일으키며 난리가 났다고 하지만, 유럽 여행은 책과 TV로만 했고, 역사와 대중문화를 아우르며 소소하고 깊이 찌르는 코미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관객에겐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의 맹구 개그가 유럽에서 통할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2010 <트립 투 잉글랜드>, 2014 <트립 투 이탈리아>에 이어 2018 <트립 투 스페인>으로 영미권과 유럽에서는 대박을 쳤을지라도, 한국에서 대중적 상업영화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영국의 대표 배우를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처럼 친숙하게 보려면 이 작품의 전편들을 봐야 하고, 딱히 <트립 투 스페인>만으로는 공감과 웃음을 끌어내는 데 필요한 조각이 부족하다. 마치, 천 피스를 맞춰가야 하는데 피스가 백 개도 안 되는 상황이다. "내가 니 애비다"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가 아들과 결투한 장면에서 나온 엄청난 대사란 걸 모르는 사람에게 누군가 맥락 없이 지른다면 별 느낌을 가지기 어려운 사막을 헤맬 것이다. 그래서 극장을 나오면서 읊조리게 된 한마디.


미안하다, 무식해서.


하지만 스페인 어느 지역의 멋진 풍경과 고독한 중년을 암시하는 듯 흐르는 울적한 음악, 화려한 수다와 케미를 돋보이게 하는 특별한 음식들은 이 시리즈의 개성 넘치는 강점이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수십 년을 이어온 우정으로 동성 친구와 먼 나라를 여행하는 상상을 해보게 한다. 한국의 중년남은 재미도 감동도 없이 책임감만으로 살지 않는가. 휴일에 가족들 데리고 가까운 테마파크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이니 말이다. 노래방 중독인 중년남들 중에 근사한 여행, 그것도 친구와 단 둘이 한다는 건 꿈꾸기 어렵다. 여행만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대화가 되어야 하는 부분에선 더 쑥맥이다. 우리는...


 







멋진 후기를 쓰고 싶은데 스틸컷으로 대신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될 만큼 <트립 투 스페인>의 고급 유머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표현 능력은 하늘과 땅이다. 한국의 개그콘서트보다 독서, 지식, 문화, 순발력, 우정, 고독, 편안한 대상, 얕잡아 보는 듯하나 존중하는 속마음, 품위가 어우러지는 코미디는 문화적 배경이 달라 어색했다. 그러면서 그 환경과 세계가 좀 많이 부럽다.








그들처럼 떠나고 싶다. 좋은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내거나, 불쑥 전화해서 여행 가자고 하는 친구를 두거나.

시간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이 없다. 아침에 벌떡벌떡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면 성공한다는 <아침형 인간>이 50만 부 넘게 팔린 한국 사회에서 그들처럼 여행 가고 싶다는 중년남은 돌발남이다. 6일 동안 6개의 현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흔적을 따라가고, 피에몬테네서 로마 그리고 카프리까지 달콤한 여행지에서 인생, 사랑 그리고 현재를 논하거나 돈키호테와 산초의 기분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판타지라도 갖자. 그런 일탈이면서 인생 공부인 로망을 현실로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처럼 인텔리전트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으려면 무한도전식 B급 유머에 익숙한 한국 사회는 갈 길이 멀다. 덧붙이자면 인간이 태어난 뒤 첫 학습은 엄마와 눈 마주치며 엄마를 따라하기다. 그 흉내 내기가 학습의 시작인 만큼 우리에게 가장 웃기는 코미디는 단연 성대모사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쉴 새 없이 성대모사 개그를 날린다. 영국식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정도 성대모사를 연이어 터뜨리는 배우는 보지 못했다. 가정에 자유로운 캐릭터와 충실한 캐릭터가 각자의 성대모사로 이어갈 때 웃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탄복했다. 역시 전세계적인 유머코드의 절정은 성대모사라는 것!


중년남 둘만의 해외여행, 그건 스크린으로 보는 상상만 해두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 쓸 말이 그다지 별로 없는 만큼 스페인의 몇몇 풍경이 담긴 스틸컷 위주로 후기를 채웠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같은 우정과 유머를 갖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된 것이 <트립 투 스페인>을 보고 얻은 메시지다. 어벤져스가 정복한 극장가에 두 남자의 수다와 여행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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