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교진 May 28. 2018

스탠바이, 웬디 (Please Stand By)

루시에서 웬디로 성장한 다코타 패닝을 보는 것만으로!



2001년 <아이 앰 샘>의 다코타 패닝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 숀 펜의 사랑스러운 딸 루시였다. 다코타 패닝이 그 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천재임을 계속 알렸어도, 김민희를 똑순이로 기억하듯이 루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똑순이를 언급하다니, 아재미 팡팡이군)

그녀가 자폐 증상이 있는 웬디 역으로 다가왔다. 여러 매력적인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채웠어도 다코타 패닝과 웬디의 어울림은 앞으로 깊이 각인될 것 같은 느낌. 영화 내내 웬디의 마음을 절박하게 읽게 되고 그녀의 편에서 몰입하고 아파하고 웃게 된다.


웬디는 싱글맘 엄마가 키운 두 딸 중에 둘째다. 웬디를 사랑으로 돌보아 온 언니 오드리는 결혼하여 아기를 키우면서 동생을 시설에 맡겨 둔 것에 가책을 느끼는 캐릭터다. 동생을 위하는 가장이자 엄마 역할을 해 온 오드리의 시선과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보호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다. 결혼생활을 마음 놓고 할 수 없다. 아기를 돌보고 남편과 오붓하게 지내고 싶어도 동생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집에 데려오고 싶은 마음과 아기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웬디의 자폐 증상이 충돌한다.



웬디가 있는 센터는 한국에서 보면 부러운 시설이다. 센터장이 관리하며 여러 프로그램과 돌봄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웬디가 스타트렉 덕후로 지내며 글을 쓸 수 있는 환경도 그런 센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24시간 규칙이 정해져 있고, 1분 1초도 벗어나는 예외를 두려워하는 웬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어려운 그녀는 스타트렉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영화 <레인 맨>의 더스틴 호프먼이 숫자에 능하듯이 웬디는 스타트렉의 장면과 캐릭터를 속속들이 외우고 있다. 스타트렉의 대사, 자신이 시나리오로 쓴 대사들이 자신을 위로하고 붙잡아주고 전진하게 한다. 자폐 증상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에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주변의 사랑이다. <말아톤>의 엄마, <레인 맨>의 동생, <스탠바이, 웬디>의 언니와 센터장. 그 사랑이 장애를 뛰어넘게 하고 감동을 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 파라마운트까지 600킬로미터, 마트 앞의 건널목도 건너본 적 없는 웬디는 자신의 시나리오 마감 전에 응모하기 위해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여정에 도전한다. 나쁜 사람도 만나고 좋은 할머니도 만나면서 아슬아슬하고 두려운 그 길에 발을 내딛게 한 건 스타트렉 작가에 대한 꿈 때문이다. 인생이 불행한 건 돈 때문이 아니라 꿈이 없기 때문이란 말이 딱 맞다. 따라 나온 강아지까지 데리고 자신을 돌봐 줄 사람 없는 곳을 향해가는 웬디, 아이팟과 지갑의 돈도 도난당하고 교통사고도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시나리오의 일부도 잃어버린다.


그런데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스타트렉의 커크 선장과 스팍이 웬디에게 말을 건넨다. 꿈을 향해 계속 전진하라고.





현대 산타페 차를 타고 LA로 달려온 센터장, 젖먹이 아기를 남편에게 부탁해 놓고 웬디를 찾으러 온 언니. 그들이 웬디를 만났을 때 야단치지 않는다. LA경찰관도 웬디를 격려한다. 경찰관이 웬디를 만났을 때 스타트렉 덕후만 통하는 이상한 언어로 소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웬디에게는 자신을 이해해 주고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 필요를 시나리오 작가를 향한 꿈이 채워준다.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은 웬디처럼 꿈을 향하는 것,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극복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아름다운 영화다. 공모전 당선보다 공모전을 향해 숱한 어려움을 헤쳐 간 그 여정이 아름답다. <원피스>의 루피가 한 말이 있다. "내 가슴을 뛰게 한 건 황금을 찾는 모험이었지. 황금이 아니었어."

웬디가 가슴 뛰는 모험을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 먼 길을 달려와 접수하려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절하는 파라마운트 직원에게 글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당당하게 한 방 날리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외치고 싶어도 답답하게 쌓아두고 고통을 견디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준 빡침이었다.


웬디는 이 모험으로 치유가 되었다. 도전하기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된 웬디는 계속 시나리오 작가를 향한 꿈에 도전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멈추지 말고 그 어떤 장벽에도 뛰어넘을 용기를 가지고 사막을 만나도 돌아가지 않게 하는 도전. 사랑받기에 충분한 영화다. 브런치무비패스로 감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트립 투 스페인 The Trip to Spai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