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시장에 가면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갔던 포근한 기억

by 황교진



어렸을 때 난 부모님과 떨어져 조용한 시골인 경상남도 마산 옆 '남지'란 곳에서 자랐다. 친구도 없었고 적막한 시골이어서 혼자 사색을 즐기며 마당의 개와 닭과 벗 삼아 노는 시간이 많았다. 외할머니 집이었는데 꽤 겁이 많고 내성적이어서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고, 밥 한 그릇 더 먹고 싶어도 속으로 삭이며 표현을 못했다. 여섯 살 때까지 그랬다.

그러다 경제적인 문제로 서울에 자리를 잡으러 가 계신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게 일곱 살 무렵이다. 아마 국민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이 나를 거두신 것 같다. 낯선 서울의 우리 집은 지금 서대문형무소 담벼락 옆 현저동이었고, 어머니는 독립문시장에서 메리야스 가게를 하셨다. 내 놀이터는 형무소 옆 공터 아니면 독립문시장이었다. 그때 맡았던 재래시장 냄새를 잊지 못한다.

오늘 둔촌동의 우리 교회 금요예배에 일찍 오게 돼 둔촌시장을 산책하며 시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맛보았다. 삶의 여러 생기가 가득한 재래시장은 내게 향수 같은 그리움을 안겨 준다.
그 옛날 독립문시장에서 국밥 배달을 하던 어떤 아주머니가 시장 골목에서 일곱 살 어린 내 어깨에 뜨거운 국밥 쟁반을 엎어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엄마는 병원까지 나를 엎고 가시며 너무 속상해하셨지만, 모성애가 그립던 나는 엄마 등에 업힌 자체가 행복하고 좋았다.

독립문시장이나 둔촌시장이나 어묵, 떡볶이, 싱싱해 보이는 생선과 야채들이 뿜어내는 냄새가 비슷하니 좋고, 가게 주인들의 얼굴도 비슷해 고향에 온 것 같아서 좋다.
다시 살아야겠고 이젠 실수하거나 서두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시장 바닥에서 얻었다.

다윗의 고백, 내가 왕이어서 부자이어서 왕궁에 살고 수많은 궁녀들을 거느려서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목자여서 부족함이 없다는 그의 인생 말년 메시지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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