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한복판에서 회의하다

무거운 어깨 그리고 가장

by 황교진



2층의 카페에서 창밖을 보며 멍때리거나 책을 읽는 날이 많아졌다. 신촌의 버거킹 3층이다. 한창 일하거나 공부라도 해야 하는 시간에 참 사치스럽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틀 동안 아이와 건담을 같이 만들며 놀아 주었어도 지금의 가난과 막막함으로 아이의 미래에 고통을 주지 않을까 하는 침침한 불안이 수시로 찾아온다. 페북이 과거의 오늘에 예쁜 우리 두 아들의 귀여운 영상이나 사진을 띄우면 마음이 더 아프다.

이 뜨거운 거리에서 목적도 잃고 희망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노숙자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절박함이 든다. 절망감을 이기는 데 잠시 멍때리는 게 도움이 된다. 언제 이렇게 넋 놓고 스스로와 마주한 때가 있었던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어깨에 이고 가장 역할을 해내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그러니 지금 좀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마흔이 넘으면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 준 적이 없다. 더 짜내야 한다, 더 뛰어야 한다, 더 아껴야 한다는 채찍질이 전부였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를 20년을 책임지고 돌보며 가족들 안에서도 밖에서도 많이 외로웠다. 절벽 끝에 매달려 혼자 결정하고 답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았고, 일을 하면서 상식과 가치를 벗어날 때 정신이 망가지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번아웃되곤 했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었어야 할 때 왜 이리 약하기만 하냐고 다그치고, 자존심도 없냐며 한심해한 적이 대부분이다.

6월 초부터 천국에 가실 것 같은 모습의 어머니 곁을 지키며 우리 모자에게 가혹한 하나님과 이 마지막 시간을 잘 견뎌야 한다는 나 자신 사이에서 암흑과 혼돈을 겨우 참고 있다. 시원하게 웃어본 적 없고, 누군가와 잠시 맛난 것 먹고 맥주 한잔 마시며 갈증을 풀어도 그때뿐이다.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상하고 삐쩍 말라가는 고통이 내게 그대로 전이된다. 아무렇지 않게 가족에게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과 천국에 보내드릴 때까지 쉬다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 사이에서 시간은 나를 표적 삼아 날아오는 포탄과 같다.

난 원래 신앙이 없었는데 흉내만 내며 살아온 가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습하고 더워도 하늘은 참 평온하다. 언제 저 평온이 내 가슴에도 들어올까.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오늘 눈을 감으면 어머니도 나도 동시에 하늘로 갔으면 하는 생각과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참고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의 멍때림은 숱한 시간을 보내온 가슴의 멍을 위무한다.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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