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간호의 마지막 4개월, 병실 예배

완전히 혼자였다면 지치고 말았을 것이다

by 황교진
20293103_10155228609056971_6806827201948023996_n.jpg


한 달 넘게 위생케어는 얼굴만 해드리다가 다시 예전처럼 핀셋과 코튼볼로 치아도 닦아드리고 물을 떠서 손도 씻겨 각질을 제거했다. 등에 생긴 욕창은 어쩔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손과 얼굴은 오늘 지나칠 수 없었다.
코튼볼에 묻어 나오는 이물질들과 물에 닿자마자 불려 나오는 손가락 사이사이의 때는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아픔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오물들을 제거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오랜 세월 어머니의 몸에 냄새나지 않도록 맑은 피부로 숨 쉬시게 애써 온 시간은 그렇게 기쁨도 되고 아픔도 되었다.


유철규 목사님과 황해숙 권사님이 예배드리러 와주셨다. 부천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안양에서 출발한 나는 예승이 열감기 때문에 소아과에 데려다주고 오느라 조금 늦어 부랴부랴 간호를 마치고 두 분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하려다 작은 사고가 있었다. 엄마 치아를 닦다가 코튼볼을 입안에 떨어트리는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겨우 핀셋으로 끄집어냈다. 삼키실까 봐 등골이 오싹했다. 20년 동안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일이 오늘 벌어지다니.


지난주보다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래도 목사님, 권사님과 찬송을 불러드리고 시편 말씀으로 위로해 드리면서 어머니 표정은 맑게 보인다. 기도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아픈 부분은 회복이 있게 해주시고 천국의 위로가 곧 있게 해주시길 소망하는 목사님의 기도에 힘이 있었다. 곁에서 권사님이 오랜 세월 이런 모습으로 견뎌오신 어머니의 고통을 같이 느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가족도 친척도 잘 돌아보지 않은 혼자의 시간에서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 가는 것에 익숙하여 그동안 교회에 예배 부탁을 드리지 않았다. 오늘처럼 목사님과 예배한 것은 집에서 어머니 간호할 때 이후 처음이다. 어머님이 언제 천국에 가실지는 주님만 아신다. 그날이 오기 전에 예배로 위로해 드리게 되어 감사하다.


병원 근처에 마땅한 식사 장소가 없어 감자탕집으로 이동해 식사하며 한층 밝은 대화를 나눴다. 현실은 무거운 짐 투성이어도 이렇게 교회 지체와 만나면 밝아진다. 그동안 교회에서 내가 받은 유익이 그러하다. 홀로 있을 때의 아픔은 사라지고 존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함께 웃는다. 17년 전에 화종부 목사님이 나이 마흔에 우리 교회에 부임하여서 제일 난이도 높은 청년인 나를 사랑해 주셨다. 마치 친형 같은 모습으로 우리 집에 심방 오셨다. 안방을 병실로 꾸며놓고 4년째 간호하고 있던 내게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라고 하시며 기도하러 장신대 갈 때 후문 밖에 있는 식당에서 갈비탕 사 먹으라며 용돈도 주셨다. 오늘 유 목사님과 황 권사님도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같은 말씀을 하신다. 감자탕을 들며 아내 얘기, 아이들 얘기 나누다가 욕창이 심해지고 있다는 수간호사님의 얘기에 무거웠던 고통을 옅게 했다. 멀리서 오신 두 분께 다시 먼 길을 가시게 하여 죄송했고 감사했다.


완전히 혼자였다면 지치고 말았을 것이다. 연명치료에 해당하는 항생제를 끊기로 하고 병원에 다녀오면 마음이 복잡하고 피로감도 평소보다 백 배는 더하다. 해열제를 먹고 금세 컨디션이 돌아온 둘째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첫째의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면서 얼른 나도 마음을 잘 세워야 한다. 집에 오면 아들 역할에서 아빠 역할로 전환이 빨라야 가뿐할 수 없는 현실을 가뿐히 이길 수 있다.

2017.07.2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통의 한복판에서 회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