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 않은 상태로 자족하는 삶
영국 일간지 <더타임즈>가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현상 공모한 적이 있다.
상위권에 입상한 '행복한 사람'에는 황제도, 귀족도, 고위 관리도,
엄청난 부자나 유명 연예인도 들어 있지 않았다.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한 아이였고,
2위는 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
3위는 세밀한 공예품 장을 다 짜고 나서 휘파람을 부는 목공,
4위는 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한 생명을 구한 의사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이런 일상 속의 기쁨이었다.
행복은 대단한 것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몰입할 때 발견된다.
크고 위대한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다.
행복은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반짝거린다.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 빌립보서에서
어떤 형편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바울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가 꿈꾸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보았다.
이 땅을 살아가는 나는 행복한 여행자일까?
큰 성을 짓고 그 안에서 돈을 쓰며 행복을 얻으려는
곧 무너질 장막집의 붙박이 거지는 아닌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로열패밀리이고 싶고,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통장을 갖고 싶고,
일 안 해도 즐겁게 사는 형편을 얻고 싶어 한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만 꿈틀거리는 시대에서
안 그러면 뒤처질 것 같은 초조함에 맞서 어떤 저항을 하고 사는가?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 무역 점유율 상위권에 오른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다시 6.25나 IMF를 겪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 아닌 불안이 늘 엄습한다.
인간의 존엄성, 진정한 가치는 저만치 제쳐놓는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행복의 가면을 쓴 불행을 향해 달린다.
성급하고 저급하고 무지한 까막눈인 채로 시간을 보낸다.
오늘 아이와 통화하고 귀여운 목소리의 "아빠" 소리 듣는 것으로
나는 행복하다.
가족이 모두 하루 잘 지낸 것으로 행복하고,
회사에서 내가 할 일들을 처리해 가는 과정에서 행복하다.
직원들과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
살짝 유머도 나누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병원비, 생활비로 늘 마이너스여도 문제 삼지 않는다.
먹이시고 채우시는 분을 믿고 안심하며,
성경의 도리에 맞는 생활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