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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Sep 19. 2020

공허함을 달래려 찾은 신리면옥.

강릉-막국수

강릉은 영감을 일으키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바다와 산이 적절히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뽐낸다. 매 3개월마다 다시 찾는 강릉은 올 때마다 그대로인 듯 새롭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도시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마치 색동옷과 같이 다채롭게 변한다.  


하지만, 이번 강릉 파견은 달랐다. 날은 화창하지만, 기분은 우울한. 그래서 더 우울한 날들이었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의사 단체행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의사로서의 책임감이 짊어져야할 짐이 되어 나를 압박해왔다. 삼일 내 새벽잠 쪼개어 가며 새로운 법안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으로 보냈고, 공식적으로는 단체 행동을 이어나가면서, 남들에게 나를 드러내지 않는 새벽에 환자의 상태를 살피다 보니 탈진상태가 되었다.   


점심 한 끼를 병원식당에서 먹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게 위로가 필요했다. 


병원에서 가까이 위치한 주문진. 항구와 빼어난 바다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막국수가 유명한 곳으로 이른바 막국수 촌이 형성되어 있다. 내가 찾은 곳은 [신리 면옥]이었다.  


주문진 신리면옥 


가느랗게 내리는 비를 흘리며, 차로 10여분. 노포 앞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가게 앞이 덩그렇게 비어있었다.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섰다. 나름 10여 년 경력의 혼밥러이지만, 추억에 남길 사진을 찍으려는 내 행동이 부끄러워서인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식당의 내부는 투박하게 쓰여진 메뉴판과 그동안 이 가게에서 추억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장님 저 회비빔막국수 하나 주세요" 


"네" 


안주인분과의 짧은 대화 후 고요가 찾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찬이 나왔다. 무심하게 부추 몇 조각 들어간 메밀전과 절임무, 김치. 단출한 상차림을 받아 들고, 메밀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無) 맛. 메밀의 거친 질감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메밀전이었다. 7천 원짜리 국수 먹는데, 배고픈 여행객을 위로하기 위한 주인장의 정성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막국수가 도착했다. 새빨간 회무침을 이불 삼아 거무튀튀한 메밀면이 누워있고, 김가루, 깨소금, 계란이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막국수의 모양새였다. 급한 대로 입맛을 다시며 계란을 입에 물었다. 시장했던 터라 계란의 퍽퍽함조차 느낄 수 없었다. 면을 자르지 않은 채로 비볐다. 누군가 그랬다. 면을 자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새빨갛게 잘 비벼진 막국수를 한 입 하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달고, 짜고, 맵다'였다. 그렇지만 조화가 괜찮았다. 균형 있게 어우러진 맛이 기분을 한결 낫게 했다. 준비된 면을 반쯤 비우고 나니 이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전에 먹어오던 [천서리 막국수] 와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다. 이곳의 막국수는 강원도의 특성이 담긴 '회' 막국수로, 여주의 막국수와는 달랐다. 여주의 천서리 막국수는 무심한 듯 툭툭 끊어지는 면발에서 투박함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주문진의 신리 면옥은 회무침의 잔가시로 막국수의 투박함을 담고자 한 듯했다. 


두 곳의 차이는 육수에서도 드러난다. 여주 천서리 막국수의 육수는 마치 사골을 우려낸 듯 한 뽀얀 국물에 후추향이 담뿍 담긴 따뜻한 육수였지만, 신리 면옥의 육수는 단맛, 짠맛이 아주 세련되게 어우러진 냉육수였다. 반쯤 남은 막국수에 육수 반 컵을 넣어 맛을 보니, 맛이 훨씬 풍부해졌다.  


어느새 국수가 담긴 그릇이 비워졌고, 낙낙한 배부름에 그동안의 우울함을 반쯤 털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신리 면옥은 [위로]로 기억되었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51?category=964340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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