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스케줄이 기가 막혔다. 오전에 경요도 방광 종양 절제술 4개, 오후에 신요관 전 적출술 1개, 국소마취 수술 3개.
오전 8시 수술방이 열리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야 소화해 낼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오전 회진을 마치고 나서 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이미 환자의 마취는 끝난 상태였다. 오늘 중으로 소화해 내야 할 스케줄이 이미 너무 많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체력 안배해가며, 오전 수술을 마치고 잠깐 점심식사시간이었다. 지친 상태로, 꾸역꾸역 밥을 입으로 밀어 넣던 중, 강릉 맛집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동면옥] 이라는 막국수 집으로, 주문진에 위치하고 있는 이 집은 그야말로 이름난 맛집으로, 막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국에서 찾아 올 정도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음 수술 환자가 들어오기 전 블로그를 검색했다. 한 블로거는 전국의 막국수 집만 다니며, 별점으로 평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블로거에 따르면 전국에는 막국수 2대 문파가 있으며, 이 대동면옥이 대표 문파 중 하나라는 것(사천왕님의 조언에 따라 정정하겠습니다. 장원과 삼교리 입니다.)이었다. 무협 소설 같이 맛집을 표현한 그분께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오후 수술이 끝난 시간은 6시를 이제 막 넘긴 시각이었다. 점심은 부실하게 먹었고, 수술 중 집중하고 있던 터라 긴장이 풀리자마자 배가 고팠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하자 점심시간에 찾아보았던 막국수 리뷰가 나타났다. 이건 신의 계시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막국수다.
강릉 주문진 [대동면옥]
영업 시간을(오후 8시까지) 확인하고 기대감에 막국수 원정대를 소집했고, 퇴근과 동시에 차를 몰아 주문진에 도착했다. 날이 싸늘해지고, 해는 짧아졌던 터라 주변은 이미 어둑하게 저녁이 내리 앉은 상태였다. 환하게 불이 켜진 낡은 간판을 따라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기대하고 마주한 건물의 외관은 글쎄...... 이 정도로 이름난 맛집의 모습은 분명 노포일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 것인지 꽤나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좌측 편은 좌식으로, 우측 편은 입식 있었고, 매장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일행과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메뉴는 수육과 냉면 그리고 막국수. 가격이 그리 비싸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는 물막국수, 회비빔 막국수, 수육 중짜리를 시켰다. 음식이 나올 때 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체감은 삼십 분은 지난 것 같았지만, 실제는 십여분 정도 걸렸다. 몇 가지 찬거리와 수육이 먼저 나왔다. 수육과 함께 제공된 것은 명태식해였다.
수육은 다른 첨가물 없이 삶아진 듯, 특별한 향을 풍기지는 않았지만 너무 부드러웠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입에서 녹아내렸다. 보들보들한 식감과 맵달 한 명태식해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게눈 감추듯 수육을 반 접시 이상 비워냈을 때쯤, 막국수가 나왔다.
물막국수의 육수를 처음 들이키고 난 뒤 든 생각은 '익숙한 맛인데?' 였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장조림 맛. 딱 그 맛이었다. 차가운 육수를 더 마셔보니, 흡사 냉모밀은 먹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기대했던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괜찮았다.
명태 회무침이 얹어진 회비빔막국수가 나왔다. 명태무침은 [신리면옥]과 다르게 잔가시가 없이 부드러웠고, 양념은 훨씬 덜 자극적이었다. 함께 나온 육수는 물 막국수의 육수보다는 조금 더 진하게 느껴졌지만, 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정신없이 그릇을 비웠다. 함께 한 막국수 원정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정리했다.
맛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참 좋다. 좋은 음식에 힘든 일상을 같이 나눌 동료가 있어 행복한 저녁이었다. 기대만큼의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좋아할 만 한 음식이라 기억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