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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Sep 22. 2020

전공의 일기.

5-12화 Urine clear

[카톡] 


저녁 10시경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보통 이 시간에 들리는 알람은 내일 스케줄 배정표인 경우가 많았다. 동기에게 내일 수술 일정에 대해 부탁을 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정표가 왔구먼. 어디 보자..... donor nephrectomy(공여 신장 적출술) 배정이네......' 


아쉬운 마음이 컸다. 중절모 할아버지의 수술장에 들어가고 싶었기에 부탁을 해 두었지만, 스케줄을 짜는 입장에서는 원하는 수술에 배정을 해준다는 것이 매우 곤욕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 중에 동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원하는 수술에 배정해주고 싶었는데 수술 일정이 빡빡해서 그 수술에는 넣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한다고 답장을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잘되겠지? 잘 되어야 할 텐데...... 부디 육종(Sarcoma)만 아니길......' 


다음날. 정신없이 오전 회진을 마치고 수술장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환자의 마취가 이미 끝난 상황이었고, 수술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환자의 자세를 교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히고, 수술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환부를 소독하고는 수술 포를 덮었다.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수술이 시작됐다. 


공여 신장 적출술은 신장 기증을 위한 수술인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신장 적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멀쩡한 신장을 떼어낸 뒤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이식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수술장의 모든 인원이 긴장한 상태로, 수술은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드디어 신장이 공여자의 배 밖으로 나왔고, 적출 부위의 이상 유무를 확인 한 뒤 수술이 종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환자가 수술방으로 나간 뒤 나 역시 서둘러 병실로 발을 옮겼다. 다음 수술 환자가 입실하기 전 중절모 할아버지의 수술 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수술은 오전 8시였고, 일반적인 경우에 지금 시간이라면 이미 수술을 끝나 있어야 했다. 전공의실로 들어가 환자 차트를 열어보았다.  


'어라? 수술 기록이 없네?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수술 진행 현황판을 열어 진행되는 수술 목록을 확인했다. 아직도 중절모 할아버지의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불안했다. 예정대로라면 한 시간이면 끝났을 수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종양의 성상이 좋지 않아 종양 전체를 모두 드러내는 중이거나, 방광의 종양을 제거하던 중 방광의 일부가 파열되었거나 혹은 요관과 방광을 잇는 요관구에 손상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의 수술이 진행 중인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네...... 곧 있으면 다음 환자 들어 올 시간인데'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에 시간까지 쫓기니 초조해졌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수술장 앞에 도착해 정맥 인식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선생님 수술장입니다. 환자분 입실하셔서 이제 마취 들어갑니다. 어서 오세요." 


"네. 수술장 앞이에요. 곧 갑니다." 


좋지 않은 느낌은 항상 들어맞는다. 수술장에서 호출이 왔고, 나는 중절모 할아버지에게 가 볼 수 없었다.  

내가 수술방에서 나온 시간은 오후 4시. 대부분의 수술들이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이제 곧 오후 회진 시간이었기에 서둘러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환자 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회진 준비를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어~ 그래. 아! 이선생 논문은 어떻게 되어가는 중이지?" 


한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졸업 논문에 대해 교수님께서 질문을 해오셨고, 등줄기에선 땀이 흘렀다. 데이터 정리에만 한 달 이상을 소비하고 있었으니, 교수님께서 정신을 차리라는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분명했다.   


"아...... 지금 데이터 정리 중입니다." 


"어디까지 했어?" 


"대상자가 삼천 명이 조금 넘어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교수님. 지금 천오백 명 정도 했습니다." 


"데이터 정리해가면서 통계도 같이 돌려봐. 괜히 데이터만 정리하다가 초록도 못쓰고 끝나는 걸 내가 많이 봤어" 


"네, 교수님. 통계도 같이 해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교수님의 신사적인 훈계 후에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회진 사항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병동으로 향했다. 


1호실 입구를 지나 2호실에 다다랐을 때, 중절모 할아버지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발길을 돌려 다시 1호실로 향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중절모 할아버지는 아직 마취 가스가 덜 빠져나왔는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Urine(소변)은 clear(투명)하구만......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 


"이선생 왔어?" 


"어? 일어나셨네요? 괜찮으세요?" 


"아퍼...... 난 왜 맨날 아픈가 몰라......" 


"오늘 수술하셨는데요. 당연히 아프죠. 그래도 소변색 보니까 좋네요." 


"그려? 아고 아퍼죽겄어." 


"조금만 참으셔요. 오늘 저녁만 되어도 훨씬 좋아지실 거예요." 


"그려. 와줘서 고마워." 


"네. 오늘 푹 주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54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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