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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vory Sep 02. 2022

시계를 볼 때마다 4시 44분이라면.. 강박장애

4시44분을 자주 보는 것, 불길한 징조일까요?

각 나라와 문화마다 불길하게 여기는 상징들이 있다. 서양에서 13일의 금요일을 피하는 만큼 우리나라는 숫자 4에 대해 예사롭지 않게 여긴다. 지금도 숫자 4 대신 F 버튼이 자리하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병원에서는 층수 표시를 4 대신 F로 하는 곳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달에도 가는 첨단 과학시대라지만, 아무리 근거 없는 것이라도 불길한 느낌은 그만큼 피하고 싶은 것이다. 우연히 4시 44분을 보게 되는 것도 왠지 찜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만난 A씨는 특히 그랬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 4를 싫어했어요. 불길한 느낌을 주니까요. 죽을 사(死)도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하게, 4시 44분을 자주 봐요. 일부러 피하려고 해도 꼭 시계를 보면 4시 44분이에요. 더 이상한 건, 점점 숫자 4가 더 자주 보이는거에요. 3시 44분, 7시 44분... 오늘 여기 오는 길에도 자동차 번호판에 숫자 444가 계속 보였어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제가 44세에 죽을 것이란 의미로 느껴져요. 44세가 되기까지 앞으로 2년 밖에 안남았는데, 어쩌죠?"




개인화 된 레이더


      모든 사람은 관심사에 따라 정보를 민감하게 찾아내는 레이더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고성능의 레이더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증거들을 매우 잘 찾아내고, 그 정보들을 차곡차곡 수집한다. 앞선 사례의 A씨는 숫자 4에 의미를 두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그 숫자가 계속해서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더 작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A씨는 37분도, 23분도, 55분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직 44분에만 특별한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시간을 볼때마다 44분을 봅니다 - 네이버 지식인 출처


지식인의 유명한 '시간을 볼때마다 44분을 봅니다'라는 글. 공포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특히 질문자 댓글이 소오름이라고. 44에 의미를 둔 글쓴이는 자동적으로 44와 관련된 증거들을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변자 채택률이 44.4%인건 인지하지도 않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의미를 부여할 일도 없다.







   알고보니 A씨가 4시 44분을 자주 보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업무 상 매일 5시에 맞추어 전체 알람을 보내야 했다. 여러 수치들을 꼼꼼히 기입하고 내용을 검토하며 5시를 기다리다 보니, 그 시간대에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시 30분, 4시 37분, 4시 41분... 그 중에는 4시 44분도 있었다. 평소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기던 A씨는 44분을 자주 보는것에 좋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숫자 4에 민감해져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같은 정보만 찾게 된 것이다.




   비둘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오늘 하루동안 비둘기를 몇 번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낼 수 있다. 빨간색 BMW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늘 빨간 BMW를 보았냐'는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숫자 4에 몰두된 사람은 언제, 어디서 숫자 4를 봤는지 기억한다.

레이더는 관심이 있는 것에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레이더는 무엇에 민감하게 작동하는가? 당신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강박장애


   A씨는 숫자 4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강박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강박증은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주위 환경과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 당장 내일 출근길에 지하철이 고장 날 수 있고, 오늘 만나는 고객들 중 어떤 진상이 있을지 모르고, 정말 운이 없는 경우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주변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강박증상이 일어난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것, 손을 몇 차례 쥐었다 펴는 것, tv 볼륨을 특정 숫자로 맞추는 것, 과하게 손을 씻으며 오염을 지나치게 두려워 하는 것, 특정 숫자에 집착하거나 피하는 것 등이 설령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왠지 그런 행동들로 다가올 불운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 숫자 4에 집착하고 있다면, 혹은 이러한 강박증상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주변에 우울한 일들이 많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일 수 있다. 위의 지식인 질문자도 마찬가지로 불행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4'에 집착하는 강박증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숫자 4가 자꾸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건강 일 수 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불안, 강박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현재 어떤 스트레스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는지, 강박증상 아래에 내 진짜 마음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집중하고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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