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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May 06. 2017

화장

 나는 고등학교 때 꽤나 간이 콩알만한 아이어서 화장을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게다가 특히 우리 학년은 화장을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내가 보고 배울 데도 없었을뿐더러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때도 가끔 턱에 뾰루지가 나곤 했지만 지금보다는 당연히 피부가 훨씬 좋았고,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턱에 뾰루지 나는 것보다 화장한 티가 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학예회 발레 공연 이후 난생처음 미용목적으로 화장을 하게 되었다. 그 날은 고 3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사실 화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그때 나는 비비만, 그것도 콩알만큼(정말 콩알만 했다) 짜서 펴 바른 것이 다였다.


 그 비비의 주인은 내 짝꿍이었다. 미술을 전공했던 그 친구는 이름이 예쁘고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까무잡잡한 피부가 보기 좋았다. 나는 친구의 그림을 함께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부러웠다. 나도 한 때는 미술을 하고 싶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를 보며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길을 가지 않았음에 안도를 했던 것도 같다.


 아무튼 졸업사진을 찍는 날 아침은 소풍 가는 날만큼이나 떠들썩하였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너무 아무 준비도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예쁘게 말고 온 친구부터 엄마가 화장을 해준 친구도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학교에 왔고. 막상 한껏 꾸민 친구들을 보니 어린 마음에 작은 불안감이 몸을 휘감았다. 평생 나를 따라다닐 사진에 나만 이상하게 나오겠구나!


 사실 화장을 한 친구들보다 안 한 친구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 어쨌든 그런 나에게 짝꿍이 비비를 건넨 것이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중에 슬그머니 어떻게 바르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손등에 살짝 짜서 바르는데 헉, 충격이었다. 아주 조금 발랐는데도 얼굴빛이 괜히 하얘보였다. 그래서 나 너무 하얀 거 아니냐고 거듭 물어보았지만 친구는 티도 안 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만 보이는 나의 어색함에 결국 그 콩알만한 비비도 다 쓰지 못하고 손등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유난히 하얀 아이였고 그 친구는 유난히 까만 아이여서 그 애의 비비 색깔이 나에게 맞았을 리가 없는데 그 때의 나는, 우리는 그런 것에 무지할 만큼 무척이나 어렸다. 다른 친구가 건네준 아이라이너는 차마 용기가 안 나서 포기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졸업사진은 평소 모습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도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그 친구가 기억이 난다.


 아, 물론 졸업앨범은 집구석에 꽁꽁 숨겨두었고.


 어느새 20대 중반이 된 지금,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학창 시절 이야기하다가


그때는 화장 안 해도 돼서 좋았는데

지금은 화장 안 하면 집 앞 슈퍼도 잘 못 가겠어. 허전해.

이제는 화장 지우면 서로 깜짝 놀라지 않을까, 농담하다가


에이 이제는 이 얼굴로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어쩌면 지금은 이게 내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지!

라고 웃음 섞어 바락바락 우겼다.


그런데도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답답한 화장부터 지우는 나를 보며

진짜 내 얼굴은 뭘까 고민이 된다.


항상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유리에 비칠 때라던가,

의무적으로 조금 올리고 있는 경직된 입꼬리를 발견할 때면 약간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진짜 내 표정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나는 고등학교 때 어떤 표정을 짓던 사람이었을까.


문득 그 시절의 내가, 네가, 우리들이 그립다.


나갈 시간이다.

자, 이제 화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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