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산 따라 걷기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위로 올라가보자
산을 오르는 걸 좋아한다. 등산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고 나즈막한 높이를 오르는 정도. 해발고도 2~300m 내외로 한두시간이면 여유롭게 정상에 찍고 내려올 수 있는 수준 말이다.
적당히 위로 올라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집과 사무실에 갇혀있던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다.
북한산 어딘가
그 중에서도 서울 사대문을 따라 위치한 남산-북악산-낙산-인왕산이 좋다. 접근성이 높은 덕택에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길이 번듯하게 닦여져있어 다니기가 편하며, 높이도 적당히 나즈막하여 오르기가 쉽다. 여기에 길 따라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성곽은 걷는 정취를 한 층 더해준다.
산책하기 좋은 남산, 낙산
남산은 제일 선호하는 코스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어 걷기에 편하고 예쁘다. 회현역에서부터 출발해 백범광장으로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계단을 따라 시민들과 함께 걷다보면 단숨에 정상까지 오른다.
그렇게 마주하는 N서울타워에는 언제나 먹거리와 플리마켓, 관광객들로 북적여 분주한 재미가 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산의 전망을 즐기면서 번화가에 온 듯한 즐거움도 주는 딱 알맞은 산책 동선이다.
낙산은 높이 125m 남짓으로(동네 뒷산 정도) 4대산 중에 가장 낮다. 제일 만만하기에 낙산공원이 커플들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지도 모르겠다. 혜화역 마로니에공원에서부터 표지판 따라 걷다보면 금세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는데, 조명 켜진 낙산의 저녁은 퍽 로맨틱하다.
낙산공원 저녁 풍경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내려가는 길에 이화 벽화마을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탈진 경사따라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를 구경하다보면 혜화역에 어느새 도착해있다.
트래킹을 위한 북악산, 인왕산
북악산이야말로 트래킹이라는 단어와 부합하는 곳이다. 적당히 잘 닦여진 등산로와 이정도면 높이 올라왔다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해발고도 덕분이다.
산책 코스도 여러가지다. 안국역 근처서부터 시작해 말바위 안내소를 통해 정상에 오른 후 부암동으로 넘어가면, 3시간 남짓으로 등산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혜화 부근 와룡공원을 통해 팔각정으로 오르는 코스 또한 북악산 정기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인왕산은 트래킹보다 등산에 가깝다. 딱 한 번 정상까지 올라봤는데, 돌산인지라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타야하는 모양새여서 정상까지 향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반하기가 어려운 인왕산은 직접 오르는 것보다는 근처 수성동 계곡에 들르거나, 인왕산이 한 눈에 보이는 부암동 카페에서 운치를 즐기는 편이 낫다. 수풀이 우거진 산과는 다르게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보고만 있어도 힘찬 기운을 준다.
혹자가 보기엔 청계산이나 관악산, 북한산처럼 높은 곳에 비하면 방금 소개한 곳들은 등산 축에도 못 낄 수 있겠다. 그래도 서울 중심부에서 손쉽게 맑은 윗공기를 마실 수 있어 날좋은 봄가을엔 생각나는 장소다.
앞으로 나아가는게 지치는 날에는 멈춰서서 위로 올라가 내가 서있던 위치를 내려다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