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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20. 2018

[서룩] 완전한 사랑을 찬송하는 '엘리펀트 송'


가을

에 혼자 대학로에서 연극 '엘리펀트 송'을 보러 갔다. 요즘 무슨 연극이 있나 볼 때마다 눈에 밟히는 안소니 인형 때문이었다. 이번이 3연인 만큼 몇 번씩이나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는데, 그냥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연말 분위기가 나는 무대. 격자무늬 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과, 벽장. 코끼리의 눈이 박혀 있는 벽. 앙증맞은 코끼리 인형. 전부 따뜻해서 공연의 내용은 조금 잔인했고, 욱신하면서도 사실 그저 그랬다. 마지막에 치달을 때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 당황했던 것이 '그저 그랬다'는 평에 한몫 했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 친구의 말에 희곡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었다. 그래도 연극 봤는데, 영화도 보지 뭐,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영화는 굉장히 연극적이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공간의 이동도 없이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자비에 돌란의 연기도 (미친 사람인 마이클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고양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린 박사와 마이클의 밀고 당기는 대화가 전부인 영화가, 긴장감 있게, 숨가쁘게 차올랐다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아무 정보 없이 닥쳐오는 줄거리를 파악해야 했던 연극과 달리, 무슨 내용인지 안 후에 듣는 영화의 대사들.
'그저 그래'의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줄거리 한복판을 지날 때 즈음 왜 그 연극을 두 번씩 세 번씩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왜들 그리 울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은 영화 '엘리펀트 송'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코끼리에 대해 아세요?

줄거리는 사라진 로렌스 박사를 찾기 위한 그린 박사와 정신 병동 환자 마이클 사이의 대화가 전부다.  이야기를 하는 대신 마이클이 내거는 조건은 세 가지이다. 1. 내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2. 내게 초콜릿을 줄 것. 3. 피터슨 간호사는 이 일에서 빠질 것. 폐쇄된 공간의 추리물인가 싶은 접근이지만, 사실 모든 대화는 마이클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마이클의 의도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린 박사가 파헤치는,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 쯤으로 치부되는 마이클의 장난과 거짓말들은 그가 혼자 필사적으로 지르는 비명, 암호이고, 유언이다.
  상담을 위해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온 마이클이 대뜸 하는 말,


"코끼리에 대해서 아세요?"
(...)
"코끼리는 모계 사회에서 살아요.
다윈이 말했어요. 코끼리는 악어의 눈물을 제외하고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동물이래요,
또 동족의 뼈를 알아볼 수 있는 동물이에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동물이기도 하죠.
(...)
코끼리는 임신 기간이 지구 상에서 가장 긴 동물이에요. 22개월이나 어미와 새끼가 한 몸인 거죠.
(...)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요."

  코끼리는 마이클에게 결여된 애정의 응집체이다. 그래서 마이클은 코끼리에 집착하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투영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선물해준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자신의 대신으로 여기고, 어머니와 친했냐는 질문에 '아홉 달 동안 가까웠고 그 뒤에 엄마가 나를 낳았죠.'라고 하며 코끼리의 생태를 중심으로 자신을 비관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물 코끼리는 시작부터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마이클의 뇌리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만나러 간 쿠바에서 그를 바라보며 죽어갔던 코끼리의 눈이 남아 있다. 쿠바에서 돌아온 공항,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는 마이클에게 인형 안소니를 내밀고, '코끼리 노래'를 알려주며 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저 '엄마 노릇'에 미숙한 거니까 괜찮다고.
그러다가 엄마가 이걸 주면서 노래를 불러줬어요. 숫자 세는 노래 있잖아요, 코끼리 노래요.
(...)
중요한 건 좋은 엄마의 자질이 있었다는 거죠.
(...)
나한테 희망을 줬어요. 지속할 게 아니면 애한테 희망을 줘선 안 돼요.

그러나 가사 속 등장하는 코끼리의 코 trompe가 '속이다'라는 뜻의 동사이기도 한 것처럼 모든 것은 거짓일 뿐이다. 그의 인생에 코끼리가 자리를 차지한 순간부터 코끼리는 죽어 있었다. 어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치. 그 끝이라도 예고하듯이.


How did the patient react?
/ His name is Michael.

   그린 박사와의 상담 내내 마이클은 계속해서 그가 자신의 성을 읽는 방법을 수정한다. "마이클 '앨린'이 아니라 '알리---인'. 길게 끄는 알리---인이라니까요." 또 의사들은 진료기록에 쓰여 있는 글들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느냐고 묻다가, 그린 박사가 기록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계속해서 읽지 않기를 요구한다.
  마이클은 사람들이 정신병동 환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고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병동의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을 쏟아도 그것은 '정신 질환자'를 향한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협조하라'는 그린 박사의 말에 분노하면서 쏟아내는 말들에는, 살아오면서 뜻대로 되어 주지 않았던 사람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내가 하는 게 협조 아니면 뭔데요? 일어나라. 밥 먹어라. 산책해라, 한 시간 동안.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시간 동안만. 자라. 일어나라! 오늘은 당신이 내 규칙을 따르지 그래? 왜냐면 오늘은 내가 결정을 내릴 거거든.
(...)
오늘은 초콜릿 하나가 아니라 세 개를 먹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그가 선택하고 결정한 하루. 그린 박사와 피터슨 간호사는 마이클의 마지막 하루를 목도한다.
  그린 박사는 마이클과 대화하며 그를 경멸하기도, 들을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늦게나마 그의 속내를 감지해낸다. 상담 내내 마이클의 성을 잘못 발음하던 그가, 증언을 녹음하며 '환자'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테일러에게 '그의 이름은 마이클이에요.' 라고 정정하는 순간. 정적이 흐르고, 담담한 그의 정면이 화면에 가득 담긴다.
  피터슨 간호사도 테일러에게 '당신은 그 애를 몰라요.' 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마이클이 그녀가 일에서 빠져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자신에게 결여된 어머니를 그녀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피터슨의 증언처럼, 마이클은 그녀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그녀의 요구에도 안소니를 내세우며 얼버무린다.

("어쩌면 안소니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난 너랑 얘기하고 싶어." "미안해요. 마이클은 긴장증 나라에 갔어요. 도와드릴까요?" "바보같은 짓 안 한다고 약속해." "맹세할게요!" "난...난 마이클이 약속하는 걸 보고 싶어.")


  마이클의 마지막을 증언하는 그들은 끝내 그의 외침에 부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애정은 닿지 않지만. 그들이 귀기울여야 했을 그의 인생 첫 결정은 죽음이었지만. 이미 코끼리는 죽어 버렸지만.


별은 빛나건만

  상담 협조를 위한 마이클이 그린 박사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건 순간부터, 그러니까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사실은 영화 초반에 스쳐지나가는 그의 방에 아침이 밝은 순간부터. 마이클은 죽을 작정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그의 말장난은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죽을 작정이라는 것'을 알고 보는 그 행동들은 하나하나가 애달프다. 알 수 없는 말들과 거짓말들로 시간을 끄는 것,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 그리고 병동의 화장실에 앉아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는 것.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음을 앞둔 남자의 아리아가 사방이 막힌 화장실에서 떠듬떠듬 흘러나올 때, 마이클이 설계한 무대는 갖춰지고, 유언에는 마침표가 찍힌다.

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절망 속에 나는 죽어가네.


사랑

  미스터리나 심리 추리극의 탈을 쓴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사랑이다. 화장실에서 읊은 노래 가사처럼 마이클의 사랑은 모두 실패하고 그는 절망에 코를 박고 죽는다.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는 24시간의 연애로 생긴 아들보다 노래와 음표들을 사랑했고, 무력한 봉제인형 안소니만이 그녀가 보여준 유일한 사랑의 증거이다. 그렇게 어느 날, 약을 먹고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911에 전화하는 대신 손을 잡고 코끼리 노래를 부르며, 마이클은 보답받지 못한 마음을 죽인다.
  병동의 로렌스 박사는 마이클을 사랑하지만, 마이클은 그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사랑은 죽은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한낱 위선이 된 채 스러진다. 버려짐은 겹겹이 쌓인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다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사랑 없이는, 뻥 뚫린 구멍을 메울 완전함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는 아몬드가 든 초콜릿을 씹어삼킨다.
  마이클이 아몬드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암시는 영화 곳곳에 던져진다. '어떤 사람은 아몬드를 먹는 것만으로도 죽는대요.' 라고 그가 직접 말하기도 하고, '오늘은 내 질병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거예요.' 라는 외침에서의 '질병'은, 그의 정신질환이 아니라 아몬드 알레르기를 뜻한다.
  하지만 그를 죽게 한 알레르기는 아몬드가 아닌 '위선'이다. 그린 박사와의 대화 초반, 그는 피터슨 간호사를 위선적이라고 욕하며 대놓고 자신은 '위선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또 그의 아몬드 알레르기를 아는 로렌스 박사에게 전화로 아몬드 초콜릿만 골라 먹은 것을 전하고, 로렌스의 우는 목소리를 들으며 "당신 우는 게 꼭 악어의 눈물 같군요." 라는 말을 남긴다.
  그렇게 피터슨과 로렌스를 욕하고 밀어내지만 정작 피터슨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못하고, 로렌스를 연인이라고 칭하고 사랑한다. 피터슨 간호사, 로렌스 박사처럼, 죽은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은 그에게 위선일 뿐이지만, 아몬드가 초콜릿에 싸여 있듯 맞딱뜨리는 마음은 다정하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동물이에요.

  마지막 문단을 남겨두고 고민을 했다.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연극과 다르게 이혼한 사이로 나오는) 그린 박사와 피터슨에게 마이클이 의미하는 것 따위를 쓰자니, 마이클에 내내 이입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둘 사이의 이해가 괘씸하고, '이 영화 뭔가 마지막은 별로잖아!'라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버렸다.
  그래서 되감기. 그들이 오롯이 마이클에게 집중할 때를 멋대로 마지막으로 말해 버릴 테다.
  그린 박사가 심폐소생을 한 후 마이클의 셔츠 가슴팍에 핏자국이 코끼리의 얼굴 모양처럼 남는다. 마이클을 알게 된 지 한 시간 남짓 밖에 되지 않은 그는 그 자국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고, 피터슨은 그 앞에 망연히 서서 눈물을 흘린다.
  단촐한 마이클의 죽음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너는 죽으려고 오늘 그렇게까지 했던 거니. 남은 자들은 폭발적이고, 괴팍하고, 과장되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절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무력함을 느낀다.
  시종일관 냉정하고 단호하기만 했던 그린 박사가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면서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린 마이클을 떠올렸다. 마이클의 한 마디를 떠올린다. 코끼리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동물이에요.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들. 멸종 위기의 코끼리들. 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절망 속에 나는 죽어가네.



서룩 談

사진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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