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달빛
옥상달빛은, 박세진과 김윤주로 이루어진 싱어송라이팅 여성 포크 듀오이다. 옥상달빛은 2010년 EP앨범 [옥탑라됴]로 데뷔 이후, 1집 [28]과 2집 [Where]를 비롯하여 많은 비정규 앨범, 참여 앨범을 내며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 초기 이름이었다는 '동방울 자매'처럼, 옥상달빛의 음악은 발랄하고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울림이 강한 데가 있다. 현재의 활동명인 '옥상달빛'이 연상시키는 특정한 이미지와도,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참 닮아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울림의 근원지이자 이미지의 원형,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청춘
옥상달빛의 키워드는 단연 '청춘(靑春)'이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청춘의 정의는 이러하다. 옥상달빛이 논하는 청춘이 이러한 정의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음악을 단순히 인생의 특정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옥상달빛의 메시지는, 청춘의 한 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성장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청춘은, 정확히 말하면 옥상달빛과 청춘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말고,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젊음 말고. 이제부터 옥상달빛의 곡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청춘을 나의 언어로 적어보고자 한다. CD1. 에서는 '새파랗다'라는 단어, CD2. 에서는 '흐르다'라는 단어로 옥상달빛의 청춘을 풀어내볼 것이다. 새파란 청춘이 흐르고, 그들의 음악이 우리의 청춘과 어떻게 입맞추는지에 대하여.
CD 1. 청춘, 새파랗다는 것
파랑, 파랗다는 것은 대개 상반되는 두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나는 희망, 역동, 젊음과 같은 것을 표상하는 반면 하나는 우울, 고요, 추위 따위를 암시한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달빛'도 그러하다. 선선한 밤공기와 함께 곳곳에 스며들어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비추지만, 때로 그 빛은 환할수록 누군가를 춥고 외롭게 만드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CD1. 에서는, 옥상달빛의 노래를 이 두 가지 '파랗다'를 통해 소개한다.
찬란: 옥상달빛의 눈부신 노래들
옥상달빛의 에너지는 역전에서 비롯한다. 앞으로 소개할 노래들을 눈부시다고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결코 우리의 현실이 희망차서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현실 인식은 냉철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바로 그 냉철함 때문에 이어지는 뻔뻔하고 태평한 파이팅은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맑고 깨끗한 가사 덕에 건조했던 마음 한 구석이 축축하게 찡해지는 것은 덤.
비정규 [옥탑라됴] - <하드코어 인생아>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 걸, 인생아
정규 1집 [28] -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정규 1집 [28] - <없는게 메리트>
없는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꺼야
시림: 옥상달빛의 추운 노래들
한편, 옥상달빛의 어떤 노래들은 우리를 가혹한 추위에 떨게도 한다. 그 언어들은 너무 직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잔인하다. 그러나 그런 단단한 화법에 엎드려 울어 본 사람은 다음의 가사를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상처이고 위로인지를.
비정규 [Life] - <구제불능>
똑딱똑딱 시계추가 나를 비웃고 서있네
이제 니 청춘은 안녕 작별인사나 해
바보 같은 나는 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시간만 죽이는지 대체 나조차 알 수가 없네
넌 참 구제불능이로구나
비정규 [희한한 시대] -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아침에 일어나 곱게 정리한 이불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아무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그런 생각을
내가 사라졌으면
내가 사라진다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 듯이
비정규 [RE:TAG] - <걸어가자>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CD 2. 청춘, 흐른다는 것
흐른다는 말을 생각하고, 옥상달빛을 떠올리며, 나는 두 가지 풍경을 떠올렸다. 하나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절절해서 흘러넘치는 눈물 동이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고요히 그러나 꾸준히 흘러가는 크고 넓은 강이다. 둘 다 투명한 유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감정은 너무나도 상이하다. 동시에, 참 신기하게도 그 두 유체는 모두 청춘의 표상이기도 하다. ‘흐르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을 당신에게, CD2. 의 곡들을 선물한다.
흘러넘치다: 옥상달빛의 베갯잇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클 때, 사람들은 벅차다-고 말한다. 그 감정은 종종 애정이기도 하고, 어쩌면 고마움이나 그리움일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우리의 베갯잇을 적신다. 가만 누워 조용히 떨구는 눈물 한 줄기, 혹은 베개를 다 적실 정도로 서러운 울음 다발. 정확히 어떤 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혼자 감당(해야)하는 감정이기에 그들은 범람한다는 점이다.
정규 1집 [28] - <고요한>
수줍게 곱씹은 내 마음은
아직도 입속을 맴돌아
이내 그리운 너의 모습을 깨우고
난 잠들지 못한 채로
정규 1집 [28] - <안부>
내 눈에 가득찬 그리움이 바람에 날아와
네 머리카락에 스며들길
조용한 이 마을을 돌고 돌아 네 볼에 입맞추길
유난히 밝았던 오늘의 달빛이 창가에 오래 머물길
유난히 많았던 오늘의 별빛이 네 창가에 머물길
아, 그리워
정규 2집 [Where] - <하얀>
눈은 아직 오지 않았고
방안은 참 따뜻했어
눈도 감지 않은 채로
우린 참 많은 생각을 했어
헤어짐을 통보받은 여자처럼
하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고
난 외로웠어
흘러가다: 옥상달빛의 시곗바늘
물 흐르듯, 이라는 말만큼이나 자연스러움과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반대로 말하면 흘러감은 곧 불가항력적인 순리이다. 마치 지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나가는 시곗바늘처럼. 그 경과의 실체를 발가벗긴 다음의 곡들은 세상의 모든 청춘에게, 즉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속삭임이다.
정규 1집 [28] - <그래야 할 때>
항상 있던 자리에 난 그대로 있지 않아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떠나요
바람처럼 그렇게 사라져요
그래요
항상 있던 자리에 난 그대로 있지 않아요
슬픈 이야기지만
믿음과는 다른 이야기에요
사랑하지만 보내야 할 때가 있어요
쉽지 않지만 그래요
그래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모두 혼자가 돼요
정규 2집 [Where] - 유서
언젠가 세월이 지나서
나를 기억해봤는데
흐릿해졌다고 미안해 하지는 마
난 정말 괜찮아
이렇게 멋없는 내 곁에 늘 있어준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아
어쨌거나
청춘은 이십대의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말이지만, 절대 우리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청춘 그 자체는 희극의 보증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비록 우리가 연기하는 이 극이 지금 비극일지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청춘은 우리의 머리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그 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옥상달빛은 어쩌면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밝으면서도 구슬프기도 한 파란 달빛은 밤의 모든 존재에게 골고루 퍼지므로. 그리고 그 빛 아래서 존재는 넘실거리고 허우적대나 결국은 아마도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흐를 것이므로. 따라서, 당장의 손아귀에 나침반이 없을지라도, 라는 무책임한 읊조림은 옥상달빛의 청춘에 대한 정의이다.
2018.01.
在人, 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