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캣 Jan 14. 2024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Time spent with cats is never wasted.

고양이는 퀄리티 타임의 달인이다. 퀄리티 타임( Quality  time)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 하나이다. (인정하는 말, 함께 있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 퀄리티 타임은 짧은 시간이라도 상대방에게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고 '감정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 퀄리티 타임을 제외하고 모두 해야 하는 특정한 행동들이 정해져 있다. 감사의 말을 하거나, 선물을 주거나, 상대방이 기뻐하는 일을 해주거나, 포옹, 손잡기, 키스 등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함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온전히 집중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가, 감정의 대화를 나눈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인가. 고영희는 어떻게 본능적으로 이걸 해내는 걸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는 쉽다. 무언가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미치게 설레는 단계라면 본능적으로 가능할까. 그러나 그런 단계는 디자인적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심장이 감당이 안되니까. 연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고영희는 모드전환이 잘 된다. 흥분한 사냥모드에서, 발랄한 플레이 모드로, 느긋한 릴랙스 모드로 전환이 자유롭다. 뇌에 버튼이라도 있는 걸까. 고양이의 퀄리티 타임은 릴랙스모드이다. 릴랙스 모드면 고영희는 집사 무릎이나 배에 자리 잡고 눕는다. 들숨, 날숨 고영희의 호흡이 느껴진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느긋하게 누워서 그냥 있다가, 서로 핥아주기도 하다가, 잠들기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상대방과 함께 숨을 쉬는 것은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아이를 재울 때도, 옆에서 함께 길게 내뱉는 명상호흡을 해주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호흡을 따라서 하다가 어느새 잠든다. (핸드폰을 보면서 재우려면... 크, 엄마들은 다 안다.) 


퀄리티 타임이 아니라면 함께 시간을 보내도, 누군가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비유를 해보자면 충전을 하긴 했으나, 고속충전 아닌 저속충전모드여서 만족이 안  느낌이다. 저속충전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고속충전의 마법을 마스터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 자식사이도, 부부사이도, 연인사이도.


호흡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눈빛을 마주 면 '감정의 대화'는 쉬워진다. 말 못 하는 고영희와도 가능한 일이니, 대화라고 꼭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마음이 통하는 일이다. 고영희가 릴랙스 모드에서 바라보는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보석 같은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말이다. 사냥모드 때의 강렬한 눈빛과는 다른 눈빛이다. 호기심이 가득한 플레이모드와도 다른 눈빛이다. 눈빛에도 강도와 레벨이 있다. 눈빛으로 죽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 눈빛은 뭐랄까. '너의 존재 그대로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눈빛이다.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말해주는 눈빛이다. 그런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나 좀 봐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방방 뛰던 아이도 금방 차분해진다.


시공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존재 자체를 즐기는 것, 그 즐거움을 알아버리면 많은 것이 변한다. 집사는 혼자가 더 편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즐기지만, 그건 같이 하는 즐거움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지구별에서 진정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까.

이전 09화 아무것도 안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