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고양이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고양이에게 놀이란 사냥을 모방한 모든 것이다. 동체시력이 발달한 고양이는 움직이는 물체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한다. 물론 집사가 재미없게 놀아주면 우리 집 고영희는 금방 흥미를 잃어버린다. 움직임 패턴이 너무 뻔하거나 반복적이면 고영희는 반응하기를 거부한다. 최대한 사냥감의 움직임을 그럴듯하게 모방해야 한다. 살아있는 쥐꼬리처럼... 빠르게 움직였다가 경계하 듯 멈췄다가... 느낌 있게 말이다.
처음에는 고영희의 흥미를 위해 놀아주다가, 슬슬 발동이 걸리면 집사도 가끔 놀고 싶어 진다. 고영희가 캐치하지 못하게 집사의 움직임도 요란해진다. 사냥을 하려는 고영희의 움직임은 점점 격렬해진다. 궁둥이를 좌우로 실룩실룩 하다가창턱에도 점프해서 올라가고, 창문 캣워커에도 서슴없이 올라간다. 캣워커는 좁은 편이라 아주 가끔 발을 헛디디기도 한다. 그래도 착지는 완벽하다. 고양이는 고양이다.
의도치 않게 떨어지거나, 사냥감 캐치에 실패하면 패턴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털을 핥는다. 일종의 스스로 자신을 달래는(self-soothing) 행위라고 한다.속마음은 몰라도겉모습은 완벽하게 태연하다.
엇? 한 번 핥아주고~
다시 덮쳤!
캣티튜드는 어떤 걸까. 고양이도 좌절할까. 고양이 답지 않게 떨어졌다고 자괴감이 들까. 고양이도 내적 소모를 할까. 그럴 리가. 목표물을 포착하면 올인이다. 게임 시작인데 좌절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게임이 어려워지면 고영희는 점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재도전한다. 그러다가 사냥에 성공하면 두 손으로 꼭 잡고 발로 차고 물고 아주 난리가 난다. 게임 중 고양이 눈에는 목표물만 보인다. 목표물은움직이고, 사냥은 치열하다.사냥이 게임이고 게임이 사냥이다.사냥할 거리가 없어서 지루할 수는 있어도, 사냥이 어렵다고 좌절하진 않는다.
내적 소모? 그게 뭐야? 먹는 건가?
사냥에 '실패'와 '성공'이라는 판단도 실은 집사의 개념이다. 고영희에게는 '놓쳤다'와 '다시 덮침'만이 존재한다.사냥게임 중에 좌절하고 슬퍼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과한 의미부여는 피곤하다. 내적 소모가 제로인 삶은 상상만 해도 자유롭지 않은가. 인간은 보이지도 않는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관념의 노예라서 울고 웃는 것 아닌가.성공 아닌 성공에 웃고, 실패 아닌 실패에 울고.감옥장이 없어도 스스로 가두는 존재라... 탈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