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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Jan 07. 2024

아무것도 안 하기

It takes me all day to get nothing done.


어떡해!

오늘 발행일인데!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집사는 마음이 급해도 우리 집 고영희는 느긋하다. 그런 집사 무릎에 자리 잡고 누워서 그루밍을 하면서 잘 준비를 한다. 뭐지? 마음 급한 건 도움이 안 되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뭐라도 쓰라는 건가? 새벽 6시에 깨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한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집사는 여전히 아무 생각 없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여전히 글을 써야 하다니. 글이라는 게 빨래처럼 짜면 나오는 거였나. 냥철학이라... 냥철학의 핵심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건데. 집사는 오늘 냥철학을 쓰는 대신 실천하고 싶다.


고영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잠에 할애한다. 자는 데 진심이다. 소파에서도 자고, 바닥에서도 자고, 주변이 귀찮으면 높은 캣타워에 올라가서 잔다. 꿈꾸려고 자는 건가. 꿈에서 고양이 별에 여행이라도 가는 걸까. 잠에서 깬 고영희는 스트레칭을 두어 번 해주고 창가를 주시한다. 나무에 앉은 까치를 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청둥오리를 보기도 한다. 보다가 잠깐 눈을 감기도 하고. 명상을 하는 건지. 그냥 조는 건지.


고영희의 일상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별거 없다. 고영희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을 느긋하게 즐긴다.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이 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행함으로 아닌, 존재로 살아있는 자체가 충분함을 증명하는 삶이다.


일요일이다. 일요일만큼은 당당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냥요일하련다. 냥이 따라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창밖은 하얀 세상이다.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아무것도 안 하기 딱 좋은 날이다. 그냥 살아 있음을 숨 쉬면서 느껴보련다. 지행합일,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보련다. 차나 마시고, 보던 소설책이나 마저 보련다.

끌리는 대로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보련다.
고영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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