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마음이 급해도 우리 집 고영희는 느긋하다. 그런 집사 무릎에 자리 잡고 누워서 그루밍을 하면서 잘 준비를 한다. 뭐지? 마음 급한 건 도움이 안 되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뭐라도 쓰라는 건가? 새벽 6시에 깨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한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집사는 여전히 아무 생각 없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여전히 글을 써야 하다니. 글이라는 게 빨래처럼 짜면 나오는 거였나. 냥철학이라... 냥철학의 핵심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건데. 집사는 오늘 냥철학을 쓰는 대신 실천하고 싶다.
고영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잠에 할애한다. 자는 데 진심이다. 소파에서도 자고, 바닥에서도 자고, 주변이 귀찮으면 높은 캣타워에 올라가서 잔다. 꿈꾸려고 자는 건가. 꿈에서 고양이 별에 여행이라도 가는 걸까. 잠에서 깬 고영희는 스트레칭을 두어 번 해주고 창가를 주시한다. 나무에 앉은 까치를 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청둥오리를보기도 한다. 보다가 잠깐 눈을 감기도 하고. 명상을 하는 건지. 그냥 조는 건지.
고영희의 일상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별거 없다. 고영희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을 느긋하게 즐긴다.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이 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다.행함으로 아닌, 존재로 살아있는 자체가 충분함을 증명하는 삶이다.
일요일이다. 일요일만큼은 당당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냥요일하련다. 냥이 따라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창밖은 하얀 세상이다.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아무것도 안 하기 딱 좋은 날이다. 그냥 살아 있음을 숨 쉬면서 느껴보련다. 지행합일,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보련다. 차나 마시고, 보던 소설책이나 마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