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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l 26. 2017

일기28_미소 유발자들

잘 가, 행복해





자고로 아이들은 이웃 어른들의 사랑을 담뿍 받기 마련이다. 우리 통로에는 일명 '삼둥이들'이 있는데, 위로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누나와 아래로 한두 살 터울의 남동생, 그리고 아직 말을 트지 못한 작은 막내 남자아이로 구성된 세 남매다. 성별을 초월해서 서로 어찌나 닮았는지 보고 있으면 슬쩍 웃음이 난다.


아이들의 엄마도 싹싹하고 상냥한 분인데 셋이라 그런지 엄마 없이 아이들끼리만도 자주 마주친다. 셋은 늘 함께 다니고 서로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어린이집 같은 곳에는 보내지 않는지 하루 종일 셋이서 함께 다닌다. 우연히 옆에서 대화를 듣다 보면 사뭇 어른스러운 말투에 또 슬며시 웃게 된다. 지난번에는 둘째가 첫째에게 "누나는 2단지에서 태어났고 나는 4단지에서 태어났잖아"라고 말하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런 삼둥이들이 지난 주말 이사를 갔다고 한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들 엄마가 꼬마들을 데리고 "저희 이사 가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번 내가 들었던 녀석들의 대화는 복선이었나 보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삼둥이 중의 막내가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직 말이 서툰 막내를 마주쳤었다. 막내는 슈퍼히어로의 망토처럼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손이 닿지 않는 버튼을 향해 까치발을 하는 중이었다. 혼자 버튼을 누를 때까지 뒤에 서서 기다려 보았지만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내가 눌러주었다. 손을 뻗는 내내 뒤에 서 있는 내 눈치를 보느라 몇 번이고 돌아보던 막내는 지난 주말 형아와 누나의 손을 잡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을 것이다. 자기 몫의 짐을 챙긴 가방을 메고 말이다.






존재만으로도 미소를 유발하는 귀염둥이들아. 앞으로도 셋이서 손잡고 신나게 동네를 누비길 바라. 다음에 만나면 엘리베이터 버튼은 꼭 너희들이 눌러주렴.


잘 가, 행복해.

덕분에 많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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