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여행 중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부모님이 계신 집을 향해 다시 짐을 꾸린다. 가방을 간편하게 싸는 편인 데다 웬만하면 버릴 수 있는 것들로 가지고 오는데, 돌아가는 가방이 오히려 올 때보다 비어서 버리려던 것들까지 도로 집어넣는다. 매번 이런 식이다.
여행 중반, 내가 자주 연락이 없는 게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니께 메시지가 왔다. "우리 비야(어릴 적 애칭)는 포르투갈이 좋으나?" 나는 이것이 그녀의 순수한 질문인 것을 안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먼 타국으로 큰돈을 써가며 혼자 나도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신기하실 것이다. 한때는 일상을 여행이라 느끼던 때도 있었다. 오랜 외국 생활로 나에게는 한국마저 낯설던 시기가 있었고 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에 매일같이 설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고작 몇 년이나 지났다고 나는 일상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기 시작한 걸까. 교만하고 때 묻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벗어나려면 시집이나 갈 것이지 왜 저렇게 혼자 나설까 싶으실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노력했으나) 다른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성격이 못되었음을. 부모님 걱정이 덜하도록 평범한 패키지여행이나 친구와 동행하는 여행마저 즐기지 못함을. (죄송하게도) 나는 이렇게 생긴 인간이란 것을. 한번 간 곳을 다른 날 다시 가는 것을 좋아하고, 찍었던 풍경을 다른 시간에 또 찍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 중인 주제에 공원에서 하릴없이 바람을 쐬거나 피곤하다며 낮에 숙소에 들어와 낮잠을 자거나 밤에는 일찍 들어와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기는, 남들 다 하는 여행마저도 평범하게 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을.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데, 덕분에 한 손 가득 남는 것은 내 손과 발 또는 그림자 사진들.
돌아오는 날, 새벽까지 시끄러웠던 거리의 소리에 눈이 떠져 일찍부터 씻고 가방을 쌌다. 좋아하는 브런치 가게 오픈 시간인 8시를 기다리는데 밖에서 교회의 종소리와 거리를 물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포르투에서 맞는 두 번째 일요일이다. 천주교 기반인 포르투갈의 일요일 아침은 오히려 월요일보다 분주한 느낌이다. 나 또한 돌아가 다시 스며들어야 하는 바쁜 일상. 하지만 한동안 자리를 비운 덕에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던 사무실도, 내 자리도, 동료들도 당분간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긴 여행의 여파이지만 싫거나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이제 조금은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은 누군가의 일상을 잠시 빌리는 일. 그들의 일상을 반납하고 나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한동안 후유증을 앓을 것이다. 하지만 곧 적응하고 익숙한 하루 속에서 다시 나름의 행복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할 것이고 한동안 그 생각에 설레어할 것이다. 반복되는 이것 또한 큰 틀에서는 나의 일상이 된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여행을 하는 것이고,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아쉬울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이번 여행은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