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기념품 쇼핑
기념될만한 물건을 전혀 사지 않고 열흘이 흘렀다.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남아있는 현금을 모아놓고 돌아가면 기념품을 전해줄 사람들을 떠올리며 작정하고 쇼핑에 나섰다. 짐이 늘어나면 이동이 번거로우니 기념품은 역시 마지막에 사는게 좋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현지에서 쇼핑을 많이 하는편이 아니다. 어지간해서는 가져갔던 짐보다 늘여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챙겨야 겠다거나 이것은 반드시 누군가를 전해줘야 겠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물건과 그것을 전달받을 누군가 사이에서 중매를 서는 것 처럼, 확신의 순간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기념품 쇼핑은 확신의 순간 만큼이나 그 과정도 꽤나 재미있다. 언제든 가서 살 수 있는 상설 매장도 있겠지만 때가 잘 맞으면 정해진 날짜에만 서는 벼룩시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을 수 있으니 어느때보다 열심히 기웃거린다. 물론 그것이 과소비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헌책시장이 약간의 고비였는데 감히 읽을 엄두도 안나는 포르투갈어로 된 옛날책들이 표지가 예쁘다는 이유로 사고 싶은 비이성적인 욕구를 자제하느라 내적갈등을 겪었다. 누군가는 분명 이걸 받고 좋아할 거라는 억지를 부리기도하고 정 없다면 내 책장에라도 꽂아두면 예쁘지 않겠냐며 스스로와 협상을 시도하다 결국 돌아섰지만 지금 생각하면 위기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기념품으로 책을 사고싶은 충동을 겪은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양한 기념품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조만간 여행지의 언어로 된 책 컬렉션이 생길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 대놓고 읽지 않는, 아니 못하는 책들을 진열해 놓고 혼자만 뿌듯해하는 컬렉션 말이다. 어차피 기념품이라는게 기능은 거의 없으니 읽지 않는 책이 비난받을 이유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지금 가만히 되짚어 보니 앞선 교토 여행에서 '일본어를 배워 읽겠다'며 케이분샤 이치조지점에서 사온 표지 예쁜 책이 생각난다.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시작된것인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의 150일 된 아기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것이 이번 쇼핑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아기 선물로는 오르골과 아기용 스푼 사이에서 꽤나 긴 고민을 하던 중 결과적으로는 핸드메이드 아기용품을 만들어 파시는 아주머니 코너에서 턱받이를 구매하게 됐다. 판매자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라는 점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아기에게 행운의 의미로 빨간색을 선물한다는 말에 예쁘게 어울리는 빨간 공갈젖꼭지 홀더를 세트로 골랐다. 역시 선물은 전해줄 때 덧붙일 스토리도 그 선물만큼이나 중요한듯 하다.
여행중 어떤것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순간은 낯선곳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행복이다. 기뻐할 얼굴을 생각하면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 쯤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것 같다. 그 선물이 생각해둔 상대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여행의 설레임이 유지되다가 내 손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돌아온 기분이 든다. 기념품을 전달하는 일은 낯선 그 곳에서 당신을 떠올렸음을 의미한다. 함께하지 못한 여행에서의 추억을 이걸로나마 나누고 싶은 내 마음이 담겨있다. 그러니 이런 내 바램을 보드라운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나는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