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5_발자취를 따라서

epilogue

by 일랑





이번 도쿄 출장에서 내내 나는 어떤 한 사람의 과거를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보내셨다. 당시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이 높지 않아 한참 일본에서 배워와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일본으로 자주 출장을 가셨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어를 공부하며 가끔 아버지께 도움을 받는다. 어머니와 함께 세 가족이 일본 온천여행이라도 한번 가자 얘기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늘 두 나라 간의 사건사고로 미루어지곤 했다. 가본 적 없었던 일본은 나에게 아버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였다.


예쁜 여행가방에 크게 흥미가 없는 나는 이번에 아버지의 출장가방을 가지고 갔다. 가방을 크게 싸지 않는 나에게 사이즈가 제일 적당 해서였다. 회사원 특유의 단정함과 칙칙함이 공존하는 가방이다. 도쿄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픽업하는데, 알록달록한 동료들의 캐리어 사이로 나오는 시커먼 중년 남자의 출장용 가방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오래된 스타일인 줄로만 알았더니 막상 일본 공항에서는 비슷한 모양의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일본 중년 남성이 많이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버스
아버지의 출장가방과 함께 길을 나선다





그 시절 회사원이었던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듯 우리 아버지도 회사 로고가 박힌 기다란 직사각형 손수첩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메모를 하셨다. 어른 특유의 필체로 빠르게, 하지만 잘 정렬해서 갈겨쓴 한자와 한글로 지나간 페이지들이 빼곡했다. 이번 출장 중에 한 번은 도쿄 지하철에 앉아가고 있는데 내 앞에 선 중년 아저씨가 옛날 아버지가 가지고 다니시던 것과 비슷한 수첩에 자를 대가며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뒤로 넘겨진 페이지는 조금 흘려 써서 그런지 외국어 같지 않아 마치 기억 속의 아버지의 글씨와 비슷해 보였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정작 요즘 아버지는 내가 구해다 드리는 예쁜 수첩들을 쓰시니 이제는 정말 볼 수 없는 젊은 날 그 모습을 타국의 지하철에서 상상하고 있는 나다.


지금의 내 나이는 아마도 아버지가 한참 일본으로 출장 다니며 기술을 배우시던 때였을 것이다. 집에는 서너 살 된 나와 오빠, 그리고 젊은 시절의 엄마가 모두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을 지난날. 유난히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던 나는 가방을 끌고 현관을 나서는 아버지를 붙잡고 가지 말라며 그렇게 울었다던데. 보는 사람이 웃음 날 정도로 매달려 울던 나는 이제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매정한 딸로 자랐다.


아버지는 출장비를 아껴 늘 오빠와 내 선물을 사 오셨기 때문에 돌아오시는 날 우리는 잔뜩 부푼 마음으로 늦은 시간까지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시기 전 어머니는 늘 집안 구석구석을 평소보다 더 공들여 청소하셨다. 오랜만에 오면 집안의 어수선한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와 거슬리는 법이라 하시며.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겨우 공항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평소 같으면 주무실 늦은 시간인데도 부모님은 구석구석 말끔히 정리된 집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가방을 풀자 유명하다는 곳마다 들러 사 모은 여러 가지 일본 과자들이 나왔다. 고작 며칠 새에 동이 났지만. 바뀐 역할에 아버지가 조금 신이 나신 것 같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우리를 도쿄로 데려다 준 비행기
도쿄의 첫인상
동료와의 쉐어하우스





출장 중에 한번 아버지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다. "도쿄는 어때?" 지난 5월 내가 교토에 갈 때는 하시지 않았던 질문이다. "어디 어디 가봤어?"하시며. 나에게 청춘을 바친 아버지에게 도쿄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으로 출장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도쿄에서, 오래된 사진첩으로만 보던 아버지의 젊은 날을 만났다. 반갑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추억이 된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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