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3_다이칸야마의 변화

소비문화에서 문화소비로

by 일랑





도쿄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긴자, 신주쿠, 시부야 같은 곳은 개인적으로 가로수길, 명동, 홍대처럼 일반적이고 뻔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개발 포화상태라고 생각했던 도쿄에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다이칸야마 지역은 조만간 다시 한번 도쿄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넘치는 옵션'으로 매장의 빈 벽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되어있던 일본 유통시장이 한때 극으로 치닫는 소비문화를 상징했다면 다이칸야마는 다음 세대가 이끌어 갈 유통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과부하된 '소비문화'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문화소비'로 옮겨가고 있는 이 변화의 중심에 츠타야 서점 다이칸야마 T사이트가 있다.





이 서점은 고객의 체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테마별로 세 동으로 나뉘어 있고 2층은 건물 간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음악 관련 서적과 음반을 모아놓은 곳에서는 비치된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고 요리에 관한 섹션에서는 식재료와 요리책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오감이 쉴 새 없이 자극받는 느낌이다. 과거 서점이 특정 주제를 다루는 서적에 관심 있는 고객에게 유사한 서적을 추천했다면 이 곳에서는 관련 제품, 아트, 라이프스타일 등 확장된 개념에서의 추천이 이루어진다. 결국, 원한다면 끝도 없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된다.

다이칸야마의 츠타야서점은 다른 지점과 다른 매력이 있다
책을 읽는 공간 (사진에는 안보이나 뒷편에 바도 있다)
책을 읽는 공간 (아래층에는 스타벅스)
책과 식품이 한 공간에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악세사리를 파는건지 그림을 파는건지 모호한 경계

최근 한국에서도 유사한 시도들이 포착되기는 했다. 식사와 휴식이 가능한 대형 교보문고 지점이라던지 한 곳에서 자동차 브랜드, 키즈카페, 셀렉트샵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유통 대기업들의 복합쇼핑몰들이 그 예이다. 마치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유통사들의 강한 의지가 투영된 것 같은 이런 공간이 다이칸야마 T사이트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서점이지만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들이 공존한다
공간 자체는 매우 큰편이지만 섹션별로 잘 구분되어있다
LP를 좋아하는 사람도 즐거울 이 곳
현대적인 서점이지만 그 누구와도 어울린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멋들어진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여기에 브랜드 메시지 전달방법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수백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 중 츠타야 서점 내에 입점해 있는 스타벅스가 유독 회자되는 이유는 서점과 카페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각 사의 매장 도면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을지 모르나 (아마도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어디까지가 카페이고 어디까지가 서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경계가 확실하면 커피가 서점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느껴 불편해진다. 이곳에는 다른 카페들처럼 여럿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마주 보는 좌석 없이 간편한 미니 테이블이 우측에 마련된 1인석이 유난히 눈에 띈다. '커피와 함께 얼마든지 책을 즐겨도 좋다'는 무언의 메시지는 그 어떤 안내문구보다 강렬하다. 이것이야 말로 고객을 향한 츠타야 서점의 배려가 아닐까.

다이칸야마 T사이트 내 브런치 레스토랑
서점에 가기전에 식사하기 좋은 곳이었다

다이칸야마점이 아니더라도 츠타야 서점을 검색하면 지점마다 건축미가 돋보이는 사진이 나온다. 구태여 매장에 가지 않고도 책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오늘날, 츠타야 서점은 오프라인 공간이 가질 수 있는 경험적 요소로 어필한 예시가 되어준다. 얼마든지 머물 수 있고 언제든 들를 수 있으며 매일 가도 지루하지 않은 편안함으로 고객들을 문 밖으로 이끌어냈다.





T사이트 외에도 골목마다 숨어있는 볼거리가 많은 다이칸야마는 서울의 연남동이나 망원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복잡한 도심에 비하면 변두리라고 할만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 개발의 파도를 비껴갔기 때문인지 더 서정적인 느낌이다. 처음 다이칸야마 역에 내렸을 때는 사진에서 본 가게들이 정말 이 동네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고 오래된 역사에 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잘 정리된 주택가 같은 곳을 지나 츠타야 서점으로 가는 길은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 봄직한 아기자기한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래되어 방치된 느낌이 아닌 재정비된 듯 말끔한 화이트톤의 건물들이 이웃하여 늘어서 있어 방문한 날의 파란 하늘과 예쁘게 어우러졌다.

츠타야 서점을 향한 우리의 신난 발걸음
골목들이 다 포토존이라 계속 멈춰서게된다
다이칸야마 테노하 매장 입구
테노하 매장 내부
요즘 핫한 메종드리퍼
핑크와 잘 어울리는 메종드리퍼 BI

같은 프랜차이즈라도 다이칸야마에 있는 지점은 다른 분위기다. 역사를 나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Lush만 해도 마치 플래그십인 양 특별한 아우라가 있고 이번에 아쉽게 가보지 못한 Aesop의 신규 매장도 이 지역의 특성과 잘 어울리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개인샵들의 멋스러움이 더해져 다이칸야마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 5월 교토에서의 감동이 도쿄에서 희석된 것 같아 서운하려던 마음이 다이칸야마에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츠타야 서점으로 가던 길,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컷

최근 알쓸신잡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오갔던 열띤 토론을 기억한다. 긴 대화 끝에 '슬프지만 컨트롤하기 어려운 자본주의 시스템의 단면'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의 어려움보다 알고도 반복되는 미래의 실패가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도쿄 방문이 처음이었던 나로서는 다이칸야마의 변화가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천천히 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여쁜 아기가 하루하루 너무 빨리 자라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다이칸야마가 최대한 느리게 나아갔으면 한다. 무서우리만큼 맹목적으로 소비하던 문화에서 한 숨 돌리며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로 접어든 현대인의 성과를 자축하며. 아끼는 마음만큼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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