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물 파는 브랜드들의 스토리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간간히나마 마주치는 일본의 모습은 '별것 아니라 여기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컨텐츠화 하여 가치 있게 만들 줄 아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관광분야만 하더라도, 캐릭터를 테마로 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명소들마다 기념품이며 특산품들이 체험 요소들과 어우러져 풍부하게 구성된 느낌을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마을이나 명소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그 본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오랜 시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예시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번 출장을 준비하면서 나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에서 나온 브랜드들에 주목했다. 이 책에서는 유니크한 스토리가 있는 도쿄의 가게들을 소개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에 응답하는 브랜드나 매장의 예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에서 소개한 많은 브랜드들 중 내가 선택한 첫 번째가 바로 쌀을 테마로 한 AKOMEYA였다. 쌀가게로 시작해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그 MD구성을 점차적으로 넓게 펼쳐왔지만 '쌀을 파는 가게'라는 본질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다.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매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였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보아도 단순히 쌀만 취급하는 매장이 아닌 쌀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Water Bar에서 세계의 다양한 브랜드 생수를 취급하듯 12가지 다양한 쌀 종류를 구매할 수 있는 이 곳은, 마치 젤라토 가게의 유리 진열대 너머로 원하는 것을 골라 주문하듯 칸마다 다른 쌀을 전시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물론 요리된 쌀을 먹어볼 수 있는 레스토랑 공간도 있으며 요리에 필요한 도구 및 쌀과 함께하면 더 맛있는 반찬 종류들까지 구비되어 있다. 쌀이라는 단순한 주제에 살을 붙여 여러 방향으로 뻗어간 아이디어들로 브랜드가 한껏 풍부해진 느낌이다.
초콜릿을 테마로 한 100% Chocolate Cafe는 이미 5년여 전 동료의 영국 출장 후기로 간접 경험했었는데 도쿄에 지점이 있다 하여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일정에 넣게 되었다. 본점이 아니라 그런지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었지만 입구부터 작은 소품들까지 초콜릿만을 이야기하는 디테일들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다. 1부터 100까지 넘버링되어있는 모두 다른 맛의 초콜릿들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고르느라 바구니를 집어 들었으니 고객 경험은 제대로 한 것 같다. 한 벽면을 채우는 냉장 초콜릿은 '우리가 만드는 초콜릿을 보여주는 모든 방법을 고민했으니 경험해보라'는 브랜드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몇 개 있어 Cafe로서의 기능도 분명하고 있다. 진한 초콜릿 브라운 컬러와 민트색 BI컬러가 상큼하게 어우러진다.
오모테산도 근처 캣스트리트 메인 거리와 연결된 수많은 골목길 중 하나에 자리하고 있던 Number Sugar. 앞서 소개한 매장들과 같이 그들의 주종목인 캐러멜에 다양한 맛을 첨가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조그마한 캐러멜 하나에 천원이 넘는 가격은 분명 부담스러울지라도, 결론은 맛있다. 머리 아프게 달기만 한 설탕 덩어리가 아니라 가공된 설탕의 풍미가 베이스에 살아있고 거기에 소금, 오렌지, 계피, 커피, 초콜릿 등 캐러멜과 어우러지는 향이 스며들어있다. 다양한 맛을 골라 체험하는 재미도 있고, 캐러멜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펼쳤다는 것도 대단하다. 유리 너머로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주방은 새로운 맛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는 브랜드의 열정과 탐구적인 자세를 부각하여준다.
한 가지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 한 우물을 파는 용기. 한눈을 팔 때마저도 본질을 잊지 않는 뚝심. 성공한 일본의 브랜드들은 늘 후대에 이런 교훈을 주었다. 세상의 흐름이 디지털을 외치고 요즘 소위 잘 나간다는 브랜드들이 원스탑 쇼핑을 지향하지만 일단은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바탕이 될 때 그 위에 탄탄한 혁신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런 브랜드들의 고민에서 그들의 진심을 본다. 진심 어린 고민들이 만들어갈 미래에는 또 어떤 브랜드들이 주목받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