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
사실 익숙하지 않은 호주식 영어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대학 재학 시절 강사 한 분이 젊은 호주분이셨는데 특이한 악센트에 수업의 반은 놓쳤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멜버른에서 마주한 그들의 언어는 걱정했던 것만큼 이질적이지 않았고, 혹시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해주는 배려일까 의심도 해 보았지만 서로에게 쓰는 영어도 비슷한 걸로 볼 때 호주식 영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멜버른은 나에게 익숙한 곳들을 한 조각씩 품고 있는 모습이다. 공원의 풀내와 전차는 학창 시절을 보낸 토론토를 생각나게 했고 여유로운 사람들은 밴쿠버와 비슷했으며 오래된 건물들은 이십 대 중반 한참 여행 다닌 유럽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억울한 마음은 잠시. 결국 이 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다른 많은 곳 들과 겹쳐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
그렇다고 이 여행이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떻게 의미 없을 수 있을까.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이미 손주 몇은 거뜬히 길러냈을 초면의 노부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바쁜 월요일 오전 도심 속 카페 테이블 너머 수트 입은 두 남자의 비즈니스적인 만남에서, 방과 후 남학생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들뜬 수다를 맞은편 트램 정류장에서 바라보며 나는 멜버른에서 흘러가는 삶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마치 야라강(Yarra) 강이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 일에만 집중하듯 멜버니언의 삶도 이곳에서 성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이 내 침입으로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며 가만가만히 흘러가는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었다.
낮이면 쏟아져 나오던 관광객 가득한 시내가 아니라, 따뜻한 커피 한잔과 갓 구운 크로와상으로 하루를 일찍 시작하던 사람들과 커다란 스크린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며 시원한 맥주 한컵을 곁들인 느릿한 평일 저녁을 즐기던 사람들이 일구어가는 삶. 조금은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하기도 한 그들의 도시 멜버른에서 내 뒤로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를 보았다. 너무 당연해서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밋밋한 날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이고 휴식이었지 않을까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