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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Mar 05. 2019

편지8





너를 맞을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 안 쓰는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던 네 아빠가, 아끼는 자전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다시 탈 수 있는 날이 올까 하고. 당연하다며, 조금 기다려보라 했지만 나 자신도 당분간 못하게 될 사소한 것들과 더 이상 못 입고 못 먹게 된 것들로 가득한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부모 역할이 처음인 우리는 일단 서로에게 막연한 희망이라도 건네보는 중이다.


네 아빠가 출근하고 난 집안을 평소보다 더 꼼꼼히 청소하며 아빠의 자전거를 닦아주었다. 며칠 전 그 대화가 다시 떠오른다. 서로가 답을 확신할 수 없던 물음 뒤에 그는, 그래도 너로 인해 포기하는 것만큼 얻는 것도 많다고 했었다. 나도 꼭 닮은 마음이다. 우리는 희생을 전제로 너를 이 세상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니까. 너를 맞을 생각에 이미 그런 것들을 뒤로하는 마음이 무겁지도, 아프지도 않은걸 보면.


마주하고 부딪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가족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날이 오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나는 가장 먼저 네 아빠에게 자전거를 (그리고 그것을 탈 시간을) 돌려주리라 마음먹는다. 그런 마음으로 그의 자전거를 닦았다. 우리 그렇게, 서로를 헤아리며 살자.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너를 보며, 어렸을 때 병아리 하나 키워내지 못하던 내가 여린 생명 하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사랑으로 키워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또 묻는 요즘이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바람에 봄이 벌써 만연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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