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 밀레니엄 시대 무쓸모한 (지방) 한국 영어 교육 대상자로,
캐나다에서 삽으로 눈을 퍼 가며 진짜 영어를 배웠다.
나의 첫 해외는 그렇게 달콤함보다 살벌함이었다.
이곳에서 대학까지 나왔고, 시민권을 받았다.
가족과 함께였지만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졸업식도 마다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온 이곳에
2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아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반 유치원에 다니며
해외라고는 발 디뎌본 적 없는 나의 아이는
난생 첫 여권으로 13시간 비행기를 탔고,
선생님들이 사랑만으로 보살펴주던 유치원생에서
그렇게 하루아침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다행히 나보다 재질이 단단한 아이는
'내가 다닐 학교구나' 싶은지 눈이 파란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다.
첫 한 달은 제 발로 들어가긴 하면서도
나와 떨어진 시간을 눈물로 채웠다.
아침마다 가기 싫다 했고, 어느 날은 아프기도 했지만
기특하게도 매일 인사하며 들어갔다.
엄마가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니 빨리 가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여전히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내가 '처음'을 겪었던 학교에 갔다.
주말이라 닫혀 있어 한산했고
내 기억과 더해져 쓸쓸하고 씁쓸했다.
엄마는 여기서 울었어.
무서웠고, 답답했어.
무서울 만큼 답답했어.
너무 조금씩이라 힘들겠지만 분명 나아질 거야.
너는 어리고 똑똑해서 엄마보다 더 잘 해낼 거야.
아이는 금세 신이 나서
나는 이것도 잘하고 이것도 잘해요라며 재잘댔다.
나는 아이에게,
잠깐 여행으로 스쳐가는 세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부딪혀야만 보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냄새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결국은 같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환상이나 막연한 경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길 바랐다.
더 크기 전에 알게 된다면,
이후에 네가 만나는 세상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그 길 위에서 배우는 영어로
네가 날고자 할 때,
언어가 네 용기를 꺾고 발목을 잡지 않도록,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든, 얼마나 먼 곳이든
혼자서도 원하는 만큼 날아갈 수 있기를.
자유로운 아기새가 되어 날아가기를.
그런 바람을 담아 오늘도 교문 뒤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에 손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