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이 무너진 다는 것은...

by 일랑


위태롭던 나와 아이의 캐나다 생활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알아듣는 것 반, 눈치 반으로

그럭저럭 주어진 시간을 채워내는 게 신기하다.

사교적이고 적극적이던 아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입을 앙 다물고 쓴 눈물을 삼키던 날들이

벌써 기억 저편으로 흐릿해져 간다.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아이가 슬쩍 집어온 책을 여상스럽게 빌려주었는데

표지에 중국 여자아이 그림이 있는 게

딱히 내 눈에는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 함께 열어보니,

홍콩출신 동화작가가 처음 미국에 갔던 10살에

직접 겪었던 언어와 문화 장벽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그 시절 답답함을 표현하듯

책은 글씨 없이 그림으로 이어지고

영어는 이해 못 할 어지러운 선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한층 더 외로워 보이도록

주변의 친구들은 흑백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나의 아이는 책을 처음부터 보고 또 보고

그 안의 그림을 따라 그려도 보고 그러더랬다.

꽤나 깊게 공감하는 눈치였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겪었던 문화충격은 어땠던가

진부하지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아늑하던 세상이

캐나다 도착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고

무너진 세상은 황폐하고 불안했다.

슬퍼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 작은 벽돌을 쌓아

새로운 세상을 세워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아이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다.

캐나다에서 영어를 배워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버텨내면 이겨내지는 이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그래서 다시 한번 너의 세상이 무너질 때

스스로 일어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새로운 세상을 쌓아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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