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을 맞추어온 세월
미용실에 정착하지 못해서
머리를 할 때마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하지만 나 같은 경우, 같은 사람에게 머리를 한 지 5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런 고민 없이 산지도 꽤 오래되었다. 오래전, 조금 싸게 머리를 해 볼 요량으로 인터넷 쿠폰을 구입하여 만나게 된 미용사가 마음에 들어 늘 한 사람만 고집해 온 것이 벌써 이렇게나 된 것이다. 물론 어느 미용실에 다니는지 주변에서 궁금해할 정도로 멋지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일 적당한 시간을 들여 단정하게 출근하기에 무리 없는 현실적인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다.
보통 미용실에 가면, 머리를 하러 온 건지 수다를 떨러 온 건지 모를 정도로 말을 많이 건다. 하지만 B의 경우, 조금은 무뚝뚝 한 편이었다. 하고 싶은 스타일을 사진으로 보여주니, 펌으로 구현할 수 있는 한계를 솔직하게 설명하며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준다. 관리도 쉽고 너무 자주 다시 펌을 해주지 않아도 되니 머릿결도 상하지 않을 자연스러운 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B에게 내 머리를 전적으로 맡기기 시작했다.
B에게 갈 때는 더 이상 사진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저, 짧게 자를지 기를지, 펌을 할지 말지 정도를 이야기한다. (자리에 앉는 순간 바뀌기도 하지만) 그러면 B는 내 얼굴형과 모질의 특성상 이러이러한 디테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고, 나는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지난 세월 내가 누누이 이야기해 온 내 취향과 B의 취향의 합의점 정도에서 방향이 정해진다.
그녀를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같은 동네 출신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서울에서 만났지만 얘기하다 보니 B도 나와 같은 지방도시에서 자랐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이도 비슷했다. 그 정도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그녀의 학교로 전근 가신 미술 선생님의 성함을 B가 댔을 때는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B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자리에 앉아 머리 상태를 보더니 알더라)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용사에게 실망하기는커녕
나는 그녀의 가식 없는
담백함이 좋았다
막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단 '헤어디자이너'였던 그녀가 '실장님'으로, 그리고 결혼과 출산 후 독립한 샵의 어엿한 '사장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 또한 내가 신입사원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부터 회사에 적응하던 과정, 이직 등 모든 삶의 변화를 지켜봐 왔다. 중간에 B가 출산으로 일을 쉬었던 시간을 버티는 게 나에게는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이제는 그저 풀타임이 아니라도 좋으니 미용을 놓지만 않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를 잘 모르던 시절과 달리, 이제까지 해온 대화가 쌓이다 보니 요즘에는 근황이나 고민 이야기도 많이 한다. 배우기 시작한 취미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새삼스럽게 그녀가 정말 솔직 하다는 걸 느낀다. 철없던 시절의 에피소드부터 자신의 성격적 단점에 이르기까지 거리낌이 내어놓는다. 지나간 일에 후회도 뒤끝도 없는 게 그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B가 같은 미용일을 하는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스스로의 샵을 운영한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육아하랴 일하랴 늘 바쁜 터라 예약받지 못하는 손님이 많아져 최근에는 드디어 첫 스태프를 뽑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녀는 조금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한 걸음씩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가 보기 좋다. 커트가 끝나면 여느 미용실에서나 으레 해주는 스타일링을 B는 나에게 해주지 않는다. 그저 매일 아침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간단한 드라이 정도만 하는 게 끝이다.
꾸밈없는 그녀와 참으로
어울리는 마무리 아닌가
유난스럽지 않게
일상을 대하는
자연스러움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