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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n 16. 2017

일기14_새신과 세상이 닮은 점

피나게 아프고 반복되는 것




본래 발이 좀 이상하게 생겨먹은 나는 신발의 가격과 상관없이 그 어떤 새 신을 신어도 발이 아프다. 그러나 새 신발을 갖고 싶은 마음이 발의 불편함을 넘어설 때, 신발장의 식구가 하나 늘어난다. 새로 산 신발을 처음 신고 나오는 날은 즐거운 내 마음과 달리 뒤꿈치 위쪽이 까져서 피가 나고 엄지발가락에 큼지막한 물집이 잡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가방에 항상 일회용 밴드를 한 움큼씩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발은 발대로 아프다 못해 피 보기를 반복하고 신발은 신발대로 처음의 예쁨을 잃어갈 때쯤, 그제야 비로소 그 신발이 편해진다. 드디어 신을 만 해졌는데, 보내줄 때가 된 거다. 기껏 상처가 아물어가는 발에 다시 일회용 밴드를 붙이며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예전에 한번 구두를 사러 갔다가 만난 점원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발이 영 불편하다는 내 말에 그는, 지금은 좀 아프겠만 몇 번 신으면 발이 구두에 맞게 변할 거라고 했다. 그럼 지금까지 변형된 게 구두가 아니라 내 발이었단 말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무서워졌다.


내가 세상에 맞추던, 또는 그 반대이든 간에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라도 변형되어야 하는 거다. 그 과정은 분명 피나게 아플 것이고 말이다. 그러다 이제 좀 적응될만하면 떠나야 하는 것, 그것이 무한정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다시 새 신발을 산다. 발이 편할 거라는 부질없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새신에게 내 발을 잘 부탁해 본다. 이번에는 피가 조금 덜 나게, 물집은 조금 덜 잡히게. 우리 그렇게 서로 적응해 보자. 오래 함께하려면 그 방법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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