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은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다.
나의 첫 번째 강아지이자, 나의 가족이며 동생인 미문이와의 첫 만남은 2015년 어느 오월이었다. 당시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기르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으나 실행으로 옮기는 건 어려웠다. 가족의 허락도 있어야 했고, 돈도 필요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때의 나는, 부끄럽지만 강아지의 한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된다는 부담감을 알지 못했다.
미문이 (나의 강아지 이름이다.)는 인천에서 왔다. 미문이를 키우던 사람은 이사로 인해 더 이상 강아지를 기르는 게 어렵게 됐다며 카페에 글을 올렸다. 글과 함께 미문이의 사진이 세 장 정도 올라와 있었다. 첫눈에 반한 느낌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마음이다. 사진 속 미문이는 하얗고 작았다. 동그란 코와 새카만 눈동자 하얀 털과 큼지막했던 발. 가족의 허락을 받고서 나는 인천으로 미문이를 데리러 갔다.
미문이는 수컷이었는데, 분홍색 옷을 입고 있어서 여자 아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작았는지 품 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미문이를 아주 조심히 안아 들고서 미문이의 머리를, 몸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내가 낯선지 몸을 웅크리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미문이. 그때 미문이는 태어난 지 갓 삼 개월이 된 꼬물이었다. 나는 작은 미문이가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히, 천천히 걸었다.
미문이를 데리고 오기 전부터 미문이를 미문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문이라는 이름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 속에서 따온 단어였다.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뜻이었다. 처음으로 네 이름은 이제 미문이야, 하며 미문이의 작은 몸을 쓰다듬었다. 자기의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문이는 미문아, 하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미문이와 함께 한 뒤로 내 삶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아마 미문이가 아니었더라면 동물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문이 덕에 나는 유기견들과, 동물권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미문이가 아니었더라면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문이와 함께 하면서 나는 너무 서툰 반려인이었고, 그래서인지 미문이를 떠올리면 늘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미안한 마음만큼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사랑 또한 가득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내게 건네는 사랑은 내가 건네는 사랑보다 더 깊고 충만하다. 줘도 줘도 부족한 게 사랑이라는데, 나는 나의 강아지들에게 그렇다.
미문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좋지 못한 말도 참 많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산책을 할 뿐인데 악담을 들은 날도 있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쫑긋 세워진 미문이의 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쓰렸다. 미문이와 내가 잡고 있는 이 줄은 그냥 줄이 아니라 깊은 유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줄을 잡고 있으면 미문이도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챈다. 속상한지, 슬픈지, 기쁜지. 마음이 좋지 않던 날에 미문이는 산책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꼭 그 모습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미문이와 나는 자주 달리고, 걸으면서 봄을 누리며 벚꽃길을 걸었고, 여름의 그늘에 앉아 잠시 더위를 피하며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가을에는 떨어진 낙엽을 밟고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으며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발도장을 찍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에게 있어 계절은 나의 강아지들이었다.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생명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기견이라고 키우기 어려운 것도 더더욱 아니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고, 또 사랑이다. 이 아이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영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만큼은 나는 늘 영원이라는 말을 쓴다. 영원히, 영원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