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쉴 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숨을 고르게 쉬어야겠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다. 겨울의 끝인지 봄의 초입인지 알 수 없는 이 계절 속에서 차디찬 바람을 온몸에 휘감으며 부지런히 달린다.
어느 겨울날엔 언젠가 딱 한 번 가보았던 한강을 홀로 갔다. 늦은 오후에 출발했기에 도착했을 땐 저녁이 되었다. 겨울의 저녁은 유난히 어두우면서도 창백했다. 편의점에서 산 초코바는 꽁꽁 얼었고 내 손의 온기로도 그것을 녹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한강에 도착했을 땐 꼭 나만 있는 것 같았고 그곳을 메우는 건 적막과 고요함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물속을 보며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생각들을 던지고 싶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단지 그뿐이었다. 너무 오래 끌어온 생각들을 더 이상 품고 있을 수 없었다. 막연하게 이 생각을 던져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게 이곳이었다. 그 생각들은 대체로 후회와 미련이었고 미안함이기도 했으며 오래 끌어안고 온 자책이기도 했다. 보이진 않으나 명확한 감정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아주 무거운 돌을 매달아 던지고 싶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찬 바람을 맞으며 그 검은 강물을 바라봤다.
빠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강물의 온도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차갑고 시리며, 아리고 어두우며 축축할 것이다. 강물에 빠진다면 머지않아 목구멍에 시린 것들이 차오를 것이다. 어둡게 물든 강물의 물결을 바라보며 그곳에 한참을 머물었다. 아무리 그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생각은 던질 수 없었고 버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늦은 밤 그곳으로 향한 걸 후회하지 않는 건 그 생각들을 버리고자 했던 시도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밤, 유난히 춥고 시리던 그 밤. 두 뺨을 날카롭게 스치는 바람에 자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어깨를 동그랗게 말던 그 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더라면 꼭 우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둠을 등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고 너무 춥다는 생각 때문에 더 깊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침대에 오래 누워 있다 보면 미루고 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떠올라 나를 짓누른다. 그 생각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건 내 손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킨다. 생각을 지울 수도, 멈출 수도 던져서 없애버릴 수도 없기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찬바람을 맞고 있으면 정신이 깨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각은 곧 우울로 이어지는 고질적인 습관 때문에 무기력하게만 있을 순 없다. 겨울의 끝자락 속에서 나는 찬바람을 삼키며 부지런히 달린다. 삼켜지지 않는 바람은 목구멍에 걸려 턱 하고 터져 나온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울처럼, 생각처럼 보이질 않는다. 달린다, 달리다 보면 바람이 온몸을 잡고 늘어지는 것 같다. 우울의 갈퀴처럼 바람의 갈퀴에 온몸이 아려도 상처하나 나질 않는다.
찬바람을 맞고 서 있으면 그 밤이 떠오른다. 그래도 어쨌거나 시도는 했던 밤. 난 여전히 생각을 버리질 못하고 끌어안는 법밖에 모른다. 그날 그 생각들을 던지기 위해 한강으로 향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 생각들을 지나치기 위해 달린다. 지나치기만 할 뿐 아직은 그 생각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인진 모르겠다.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건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를 때, 그 찰나이다. 그때 비로소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