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문 Aug 11. 2024

여름의 다정

여름 시리즈

어수선한 여름밤, 매미의 긴 울음소리를 들으며 밤새 뒤척였다. 밤이 긴 것도 아닌데, 이 짙고 무거운 여름밤이 오래 지속될 것만 같아 더 잠에 쉽게 이루질 못했다.목구멍 사이사이로 들러붙는 더운 공기와 겨우, 터져 나오는 옅은 숨에 집중하며 두 눈을 감았다. 누군가는 매미가 잠에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불빛 때문이라 했다. 완전한 어둠이 없는 이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그 불빛에 의지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불빛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어느 날의 나는 전자이기도 했고, 후자이기도 했다.


어느 밤엔 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울었다. 또 어느 밤엔 퇴근 후 들어와 몸을 씻고 모든 불을 껐다. 깨지지 않는정적 속에서 내가 느낀 건 안정감도, 고요함도 아닌 불안과 우울이었다. 지독했다. 우울에도 자국이 있다면 내 몸에는 어느 정도의 자국이 들러붙어 있을까. 막막함과 막연함 사이에서 울지도 화를 내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오래 잠에 들고 싶었다.내일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지 않기를 오래 바랐던 것 같다.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우울의 깊이는 더더욱 깊어졌다. 여름이 깊어지던 어느 칠월에는 더 마음이 어수선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마음속에서 누군가는 내 마음을 잡고 내가 더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를 오래 끌어안았다. 익숙하지 않고 그저 낯설기만 해서 달아나려는 나를 자신의 주변에 두며 조근조근한 말투로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깊어진 밤에 내가 나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았고 툭툭 던지는 농담에 실없이 자주 웃었다. 핸드폰의 열기인지, 후덥지근한 밤공기 때문에 몸에 열이 오른 건지 붉어진 얼굴로 너의 말을, 목소리를 마음속에 조금씩 붙잡아두었다. 속수무책으로 우울해질 때면 네가 한 말을 꺼내 조심스레 뜯어보았다. 그리고서 자주 발음하고 기억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어느 밤, 쉽게 잠에 들 것 같으면서도 잠에 들지 못하던밤에도 나는 너와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고 가는 이야기는 대체로 우리의 이야기이거나, 너의 이야기 혹은 나의 이야기 때론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다. 때로 너는 장난스러웠고 진지했으며 농담을 던져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 시간이 짧지만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나에 빠져 우울에 허덕이는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마음이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 는 다정한 말속에서 그럼 보러 갈까 하고 내게 오는 너에게 나는 자꾸만 기대가 심어진다. 한층 깊어진 여름밤 속에서 나는 그 어떤 열정도 여름에 빼앗긴 사람이었는데, 너를 보고 있으면 잊고 있던, 잃어버렸던 마음들이 조금씩 떠오르고 생겨나며 행동하게 만든다. 과부하 된 감정과 생각 속에서 너는 나의 작은 창문이 되어 다른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끔 환기를 시켜준다.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툭하고 내뱉는 너의 말에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를 있는 그 자체로 좋아한다는 말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고,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있는 그 자체로 사랑하는 너의 말을 곱씹으며 얼룩진 우울을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너의 다정한 고백을 들으며 너에게 말했다. 너는 꼭 선물 같다고, 내가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사람이선물로 다가온 것 같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에는 힘이 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다정함으로 가득하다.


너는 알지 못하지만 너는 내 말을 들을 때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다. 내 말을 집중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너는 때론 내가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오랜 과거와 우울한 생각들을 지나쳐 나는 요즘, 내일을 바라보고 내년 여름을 바라보고 있다. 기분이 좋다는 말을 가끔 내뱉고 글을 쓸 힘이 생기고 주변을 둘러볼 마음이 생긴다. 언제 또 무너질 마음일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두려워하지 않는다.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의 마음이 귀하듯 너의 마음을 오래 귀하게 여기려고 한다.

이전 18화 여름 불면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