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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Sep 11. 2024

윤오에게

여름 시리즈_마지막

어떤 날엔 윤오에 대한 글을 읽었어. 동그란 이름이 꽤나 인상적이었지. 이름과 다르게 너의 얼굴은 뾰족하고 어딘가 각져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윤오의 이름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윤오라는 이름을 발음해본 적은 있었어. 지금도 나는 윤오의 이름을 발음하고 있어. 윤오야. 너를 불러본 적은 없지만, 나에겐 네 이름이 꽤나 익숙해. 언젠가 나는 네 이름을 과감히 불러보고 싶었어. 네 이름만 떠오르면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멍해져. 화가 나기도 했고 어둑한 슬픔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곤 했지. 특히 사람 많은 곳에서 네 이름이 불현듯 떠오르면 나는 걸음이 빨라졌어. 어디든 빨리 가고 싶었거든. 그곳이 어디든, 이곳만 아니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 윤오야, 너는 그런 적이 있었니. 들어본 적도 없는 내 이름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간질거리는 손가락을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단, 그런 생각 너도 해본 적 있니.

윤오야, 나는 네 이름을 꽤 길게 부르고 싶어. 이 글이 끝나면 나는 어디에서도 네 이름을 부를 수 없거든. 윤오야. 네 이름은 여름보단 겨울이 어울린단 생각이 드네. 별자리가 전갈자리나 염소자리일까. 윤오야 웃기게도 나는 물고기자리야. 참 나하고 잘 어울리는 별자리란 생각이 들어. 내가 사수자리나, 천칭자리였으면 어땠을까. 바꿀 수 없는 게 이토록 많은데, 바꾸고 싶은 건 늘 여전해. 윤오야 너도 그러니. 내가 생각했을 때, 넌 불만이 늘 많았잖아. 지루했고 따분해했잖아. 윤오, 네 이름을 떠올리면 나는 그런 것들이 떠올라. 애석하게도, 왜 그런 것들이 떠오를까. 윤오, 너 원래 말이 없는 아이였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 다른 이들은 알까, 네가 말이 없고 늘 표정이 어두운걸. 너의 표정은 늘 백지를 닮았는데, 가끔 그 백지 위로 나만을 위한 표정이 그려질 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 너에게도 다양한 표정이 있어서.


윤오야, 나는 가끔 네가 걱정 돼. 그래, 다 부질없는 걱정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을 널 걱정하고 연민해도 될까. 동정에 가까운 마음이라도 품어도 될까. 나는 나조차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는데, 윤오 너에 대해선 너무 쉽게 좋은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지. 윤오 네가 좋지 않은 사람이었더라면 이 모든 게 무의미 해질 테니까. 윤오야, 우리는 모두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어. 너도 그러니. 그곳은 어떤지, 궁금하진 않아. 나는 네가 있는 그곳이 너무나도 싫거든. 가끔은 네가 있는 그곳이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단 생각을 할 때도 있어. 참 무심하지. 근데 윤오야,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때도 있어. 잔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해해 주겠니. 네게 이해를 바란 적은 없었잖아.

윤오야 네겐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네게 가장 솔직해지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도 솔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네게 많은 것을 숨겼지. 가끔은 그걸 들킬까 두려워지곤 했어. 그래서 윤오 네가 말하는 대로 나를 바꿔나갔지. 변형된 모습이, 가끔은 기괴하기까지 했는데, 어쩌겠어. 그렇게라도 윤오 너를 붙잡아 두고 싶었어.


윤오야, 문득 우리가 아주 멀리, 멀리 떠났던 그날이 생각나. 그 기억이 가장 최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기억들보다 그날의 기억이 제일 어렴풋하게 느껴져. 내가 그렇게 멀리 가긴 했었을까? 집 앞에서 버스도 제대로 못 타는 내가 그렇게 멀리 갔다는 게 가끔은 믿기지 않아서 꿈같을 때가 있어. 그곳에선 너와 매일을 붙어 있었지. 그렇게 너와 붙어 지낸 것도 처음이었는데, 왜 지금은 그 기억들이 온전하지 않을까. 행복하진 않았던 모양이야.


윤오야, 나 네 옆에 누워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어. 아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걱정했던 것 같아. 돌아가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들이 너무 지치게만 다가왔거든. 게이트를 지나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윤오 너는 재빠르게 네게 익숙해진 곳으로 돌아갔지. 재빨리 등을 돌리며 돌아가는 너를 보며 나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쁜가 보다,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어. 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윤오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네가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어. 네 이름이 윤오는 맞긴 했을까. 사실 네 이름은 윤호나, 윤우나, 윤이었는데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아무렴 어때. 나는 이제 네 이름을 부를 일도, 그래서 실수할 일도 없는데. 윤오야. 너는 너와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너는 그 어느 때보다 솔직했잖아. 네가 내게 하던 말, 실은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던 말이었어. 가끔은 내가 가장 비참해졌던 순간을 떠올려. 내가 비참해지고 한 발 물러나고 너를 이해해도 윤오, 너는 늘 네 입장에서만 생각했잖아.

윤오야, 정말 단순하게 그냥이었니. 나는 그냥, 이라는 네 말에 목구멍이 뜨거워져도 견뎌내려고 했어. 목구멍이 뜨거워지면 차가운 물을 마시면 됐으니까. 윤오야, 네가 그랬지. 사람들이 너에게 많은 것을 바랐다고. 윤오 네게 나와 같은 마음을 바란게 그렇게 네가 견뎌내기 버거운 마음이었을까. 윤오야, 너는 늘 과거를 말하면서 그날의 나를 비난했잖아. 왜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네 모습은 비교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어. 그게 네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었다면, 이해할게.

윤오야, 나는 이제 여름이 두렵지 않아. 극도로 여름이 두려웠는데, 이젠 오히려 여름이 더 좋아졌어. 윤오 너는 어떤 계절을 좋아했지? 윤오 너는 늘 땀이 많았으니까, 겨울을 더 좋아했나? 그러고보니 나는 네가 무슨 계절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네. 그렇다고 네게 어울리는 계절도 잘 모르겠어. 윤오야, 이제와서 너를 정말 사랑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어쩌면 네 이름을 찾고 네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아마 오래된 버릇은 아닐까.


윤오야, 네게 행복을 빌어줬던거 정말 진심이야.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달랐을 뿐이니까. 윤오야, 동그란 이름만큼이나 뾰족했던 윤오야, 너를 다듬어주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려. 그게 내 몫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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