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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Sep 27. 2024

파란의 조각

우울 일기_1

드문드문 찾아오는 글자들을 애써 무시한 채 두 눈 위로 쌓아만 둔다. 두 눈을 뜨는 순간 마주하는 것들에 이름을 가져다붙였다. 그러지 않으면 잊고 살테니, 어쩌면 외면하고 살테니 이름을 꾸역꾸역 붙여야만 했다.


묵직하게 내려 앉은 여름밤엔 늘 그랬듯 자주 울었고 오래 혼자였다. 이제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우는 일도, 곁에 아무도 없는 것도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괜찮아도 괜찮지 않아도, 다 그런게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때론 그런게 중요했다.


혼자 울고 혼자 눈물을 그치고 혼자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마음을 달랬다. 어느날엔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내 감정을 송두리째 가지고 도망간 기분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 편이 나을까. 더 이상 잘 느껴지지 않는 감정을 그런대로 내버려뒀다.

또 다시 날뛸 것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수많은 선택 속에선 이미 지쳐버린 후였다. 끌려다니듯이 선택을 했다. 어쩌면 내 입은 얼굴에 달린 게 아니라 목구멍 어딘가에 달린 게 아닐까. 말을 해도 진실이, 진심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비난과 자책 속에서 내가 감수해야 될 것들을 떠올렸다. 쓸어모은 것들을 그대로 모아만 두었다. 어떤 이야기는 때론 소화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나간 이야기를 오래 질겅거리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 땐 그 이유마저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우는지 나도 모르겠어. 조각난 말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를 잊고 너를 잊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낭비한다. 내 말을 들은 너는 주로 코웃음 쳤을까.


이젠 오랜 생각 속에 말들을 가둔 것도 지치는 일이다. 전부 네가 자처한 일이라고 한다만, 이런 걸 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쉽게 오고가는 말들, 때론 내 목을 깊게 누르고 싶었다.


모든 걸 끝내야 내 귓속을 맴도는 소리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 뭐가 그리 괴롭냐고 묻는다면 뭐가 괴로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지 모르겠는게 괴롭다고.


눈을 감으면 영영 뜨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는 내일이, 왜 내겐 지옥같을까. 나의 무능함과 멍청함에 나도 질려버린걸까.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떤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사랑이 필요할까.

고작 이런 나라서 이런 걸까.


어느 밤엔 내 목을 깊게 눌렀다. 터져나오는 숨에 소름이 끼쳤다. 그럼에도 살고 싶구나. 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지겹다.


죽어야지만 이해받는 괴로움도 있구나 생각한다.


난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없는 멍청한 인간이다. 날 비난하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래, 그래. 그 말들을 수용하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저물어가는 것들 속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때론 기가찬다. 귓속을 메우는 욕들과 비난을 꾹꾹 삼켜낸다. 언젠간 내 손이 꼭 필요하지 않는 날도 올까.


밤이 깊다. 더 깊어질 날들만 남았겠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랬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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