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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원 Jul 08. 2021

캔들과 중용

나의 투잡 이야기

예전에는 좌우명에 대한 질문에 '후회하지 말자', '현재를 즐기자'라는 지극히 YOLO 스러운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가치관도 시간이 흐르며 바뀌는 것인지 요즘은 딱 한 단어로 표현한다.


'중용中庸'

1.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2. 재능이 보통임. 또는 그런 사람.


사전을 찾아보면 위와 같이 나온다. 동양 사상, 중용사상에 대해 학생 때 배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고 그저 과유불급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중용'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꽤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아니 20대 때까지도 나는 중용을 지키지 못한 삶을 살았다. 친한 친구가 생기면  집착하는 수준으로 그 친구를 좋아했고, 게임이든 뭐든 하나에 꽂히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지나치게 빠져 버렸다. 그렇다면 놀 땐 화끈하게 놀고 공부할 땐 미친 듯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반대로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중용의 두 번째 뜻인 '재능이 보통인 그런 사람'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 되었다.


살아감에 있어서는 중용을 지키지 못했고 능력면에서는 중용을 지키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그때 읽은 책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글이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아야 한다. 만약 방이 하나이고 그 방을 한 사람, 혹은 하나의 어떤 것으로만 채웠을 때 그것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마음속에 방이 하나만 존재하고 그 방이 남자 친구나 남편으로만 가득 찼을 때, 그와 헤어지게 되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기에 쉽게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각 방에 사랑, 가족, 친구, 취미, 일, 자기 계발 등 여러 가지로 채워 놓는다면 하나를 잃었을 때 얻는 타격이 방 하나일 때보다 현저히 작을 것이라는 말이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어떤 부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글을 읽으며 굉장히 적절한 비유라 생각했기에 그 내용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이 중용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방으로만 이루어져 극단적이지 않게, 여러 방으로 나누어 골고루 변함없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후로 나는 마음의 방을 여러 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연애를 할 때에도 내 생활 전부를 그로 채우기보다 혼자 하는 취미 생활도 유지하고 친구들도 꾸준히 만나려고 했다. 대신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엔 100% 집중하며 그와의 연애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이별 후 겪는 힘든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었고 덕분에 조금은 빨리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성향인 나는, 일에서도 중용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캔들 공방과 한국어 강사일을 함께하며,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기에 오래도록 할 수 있는 것 같다.


중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캔들을 만드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에도 해당된다. 흔히 보는 투명한 용기에 담긴 뽀얀 소이 왁스 캔들은 가장 기본이라 만들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공방 운영자분들은 입을 모아 제일 까다롭다고 말한다.

용기와 소이 왁스, 향 그리고 심지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뭐가 어려울까 싶겠지만, 오히려 색이나 디자인이 전혀 들어가지 않기에 작은 결점이 더욱 커 보여 완성도 높게 만드는 것이 힘든 캔들이다. 처음 캔들을 배웠을 때 가장 실패를 많이 했던 종류이기도 하다. 실내 온도나 왁스 온도가 맞지 않거나 왁스와 향을 섞은 후 젓는 시간이 적절하지 않거나 용기에 붓는 시간이 너무 빠르거나 느릴 때 실패하고 만다. 여기에 계절과 공간의 특성도 반영을 해야 하고 왁스의 종류, 향과의 조화도 중요하기에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때 바로 완성도 높은 캔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중용을 생각하며 캔들을 만든다.


이는 매우 사소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좌우명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말한다. 바로 '중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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