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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향인의 지옥

by 유이언

군대는 내향인인 내게 지옥이었다. 현관 밖 세상 자체가 낯설고 불편한 내향인에게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 불특정 다수와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일은 고문이었다. 인간이 갖는 가장 개인적인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샤워와 용변의 시간마저도 오롯이 나 홀로 보낼 수가 없으니 독 안에 든 쥐처럼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사람으로부터 누수된 에너지를 어찌어찌 충전이라도 하고 괜찮은 척이라도 할 텐데. 군대라는 집단은 단 한순간도 나를 홀로 두지 않으니 에너지가 방전되다 못해 남은 연료를 끌어 쓰다 스스로를 태워버리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도 내 눈에 보이는 사람 수만큼 에너지가 누수된다. 사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기력을 소진해 버리는 내가 수십 명과 함께 생활을 하고 훈련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힘들다 못해 얼이 빠진 상태로, 살아있지만 죽은 목숨처럼 생활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 자체로도 힘든데 군대라는 조직이 가진 수직적인 문화에 더욱 목이 조여왔다. 위에서 시키는 것은 어떻게든 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의무를 따라야 할 필요 없는 시간에는 그저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선임에게 알랑방구를 뀌기는커녕 시키는 대답이나 겨우 했고 누구에게도 도통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정말 간절하게, 어느 곳에도 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나를 신기해했다. 마음에 드는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몇 명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신기해했다.


"이언이는 왜 너네하고는 얘기를 하냐?"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친구들과 마음이 맞았다. 나머지 동료들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나의 인간관계는 군대 밖에서도 좁디좁고 깊은 형태였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폐쇄적인 친목 방식이었다.


시간이 꽤 흘러도 넋을 놓고 살았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길 바라며 부대에서 사람이 없는 곳을 용케 찾아내 식빵 굽는 고양이 마냥 홀로 앉아 있었다. 그래야 좀 살 것 같았다. 간혹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나눠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내 수감생활을 하는 기분이었다. 밥도 잘 먹지 않아서 키가 180이 넘으면서 몸무게가 50kg대 까지 빠졌다. 군대라는 곳이 누구에게는 편하겠냐만은 내향적이고 우울한 나에게는 매 순간마다 숨통을 틀어막는 체제였다.


다들 그저 내 성격이 극도로 조용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까지 군대라는 조직에서 힘들어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고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이 나는 점점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내향인은 그렇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서 고통이 폭발하기 직전까지 대개 혼자 아픔을 곱씹는다. 힘들어 뒤질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아냐, 나만 힘들게 아닐 거야 하며 자신을 달랜다. 어떠한 사건이나 건강의 문제로 켜켜이 쌓아온 고통이 폭발하는 순간, 그제야 외면해 온 감정을 통째로 마주한다. 내향인은 이토록 잘 견딘다. 그리고 때로, 이토록 미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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