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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말했지만 사실 죽고 싶었어

by 유이언

내향인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엄격하게 검열한다. 타인이 비치는 감정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극도로 주관적이라고 여기거나 심지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그토록 어렵다.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까지 만 번의 고민을 거친다. 고심 끝에 정리한 말을 입 안 가득 물고 뱉을 준비를 하다가도 '아니다, 그냥 말자'하며 속으로 삼켜버릴 때가 태반이다. 삼킨 말은 희석되지 못하고 가슴에 멍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멍도 있지만 아예 평생 맺혀버리는 멍울도 있다. 내향인의 가슴을 들여다보면 시간이 흘러도 빠지지 못한 자줏빛 멍들이 여기저기 고여있을 것 같다.


내향인은 마음속으로 수없이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열어 보이지 못한 비밀의 방이 많다. 자신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하다 보면 때로 두 개의 자아 중 하나가 지쳐 나가떨어져 자책이라는 감정을 끌어온다. 자책이 자꾸 중첩되면 우울을 만든다. 우울은 응고가 되고 덩어리 져 어느덧 돌덩이처럼 무겁고 딱딱해진다. 이때 만들어진 우울의 덩어리들은 별문제 없이 굴러가던 내향인의 삶을 잡아 세우기도 한다. 이 덩어리들은 가슴과 머리에서 밤 낮 없이 서걱대며 숨통을 조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추락하면 죽음 밖에는 없는 벼랑 끝에서도 내향인은 웬만해선 누구에게도 메이데이(Mayday: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할 때 사용하는 국제적인 긴급 신호)를 외치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상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곡소리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 와중에 애잔하게도 참 잘 웃는다. 힘든 상황에서도 '괜찮아' 하며 습관적으로 미소 짓는다. 남들 보기에는 참 속 깊고 믿음직해 보인다. 그래서 그 웃는 얼굴 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낳아준 애미 애비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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