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약속도 없는 날에는 문득 심심하거나 적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떠오르는 몇 명의 가까운 친구가 있지만 선뜻 먼저 연락을 하기엔 어딘가 멋쩍다. 어쩐지 바쁜 사람 귀찮게 하는 것 같고, 왠지 내 연락을 반갑게 받지 않을 것도 같다. 핸드폰을 들었다가 이내 다시 내려놓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특별한 용건 없이 먼저 연락하는 일이 내겐 여전히 낯설다.
특별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누군가의 연락을 받으면 왜 심장부터 철렁하고 난리일까. 아주 친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긴장한다. 그래서 카카오톡에서 나와 친한 소수의 사람들만 각자 다른 알림음으로 설정해 둔다. 기본 알림음이 울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듯 놀랄 때가 많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의 알림음이 울리면 놀라지 않을 수 있다. 개별 알림음도 그 사람의 특성에 맞는 알림음을 설정했다. 우리 엄마는 차분한 사람이니 단조의 '피아노' 알림음을, 성격이 유쾌한 대학 동기 누나는 '휘파람' 소리로 해두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핸드폰을 늘 무음으로 해두고 살고 싶다. 내게 오는 연락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하루에 몇 번만 내가 원할 때 핸드폰을 체크하고 선택적으로 회신을 해주고 싶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의 직업은 섭외에 생존이 좌우되는 프리랜서. 화장실을 갈 때를 빼놓고는 핸드폰을 늘 쥐고 살아야 한다. 섭외 연락 하나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지만 친절하게 응답해야 한다. 타인의 연락에 긴장되고 불편하면서도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밝고 서글서글하게 답해야 하는 것이 매번 버겁고 지친다. 그래도 어쩌랴. 먹고살려면 자본주의 친절함이 필수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잘하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연락이 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막상 카카오톡 메시지 한 번 울리지 않는 날에는 적적함이 파고든다. 모두가 나를 잊었나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게 똑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불편하면서도 막상 인기척이 없으면 홀로 남겨진 것 같다. 마음이 스산해져도 사람을 찾는 일은 별로 없다. 과잉생각이 될지언정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있거나 흘러넘치는 생각을 글로 적는다. 내향인인 내가 가장 자주, 그리고 편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것 같다.